정문의 작품

호주 시드니 한국문학협회와 변경문학

미송 2012. 5. 24. 21:40

호주 시드니 한국문학협회와 변경문학

 

 

 

이정문

 

 

 

한국 신문학사를 펼치면 그 대부분의 첫 장이 이인직의 <혈의 누, 1907)로부터 시작된다. 만세보에 연재된 이 소설이 신문학의 효시로 평가되는 이유는 한글을 본격적으로 문학에 도입한 것이고, 또 하나는 자유, 평등, 박애를 기초로 하는 서구의 근대사상에 충실한 점이다. 이인직은 <혈의 누>에서 재가하는 장면을 통하여 조선 전통의 과부재가금지를 통렬히 비난한다.

 

“조선 풍속 같으면 청상과부가 시집가지 아니하는 것을 가장 잘 하는 일로 알고 평생을 근심으로 지내나, 그러한 도덕상 죄가 되는 악한 풍속은 문명한 나라에서는 없는고로 젊어서 과부가 되면 시집가는 것은 천하만국에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이런 전통은 소설 <무정>을 통해 자유연애, 자유결혼, 자유이혼을 주장한 이광수의 민족계몽문학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문학사상 한 편에 자리하게 된다.

 

한국의 신문학사는 1910년 춘원 이광수 시대에 이어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한 김동인과 사실주의의 염상섭, 현진건 등의 1920년 동인지시대로 접어든다. 그리고 김기진과 강경애의 사회주의 카프문학이 1930대에 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아 좌절된 후, 우리 문학은 일제 총독부의 강력한 통제와 관리에 길들여진 순수문학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흘러간다. 해방 후의 이데올로기 문학과 한국동란으로 인한 전쟁문학, 그리고 독재에 항거한 4. 19 저항문학과 군부독재와 맞선 1980년대 민중문학으로 문학사는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정도의 줄기로 한국 신문학사는 대충 설명을 끝낸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비극의 강토를 딛고 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문학이기에, 그 설명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 위와 같은 기술방법은 우리 신문학의 일부만 드러낸 절름발이 문학사로서, 일제시대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국내의 동경유학파들만 부각시킨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학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반만 거머쥐고 반은 포기한 셈이다. 조국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거나 독립운동을 하며 우리의 글과 혼을 지켰던 망명문학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필자는 교포들의 문학을 변경문학(邊境文學)이라고 지칭한다. 변경이란 이질적인 문명과 문명의 충돌지대다. 충돌은 생동감이고 새로운 장이다. 교포는 우리의 문화를 다른 문화 속으로 침투시키거나 다른 문화를 우리에게 끌어와 적응시키는 문화의 전달자로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이런 문화의 최전방인 변경문학을 논하기 전에 일단 그 효시로 보여 지는 일제시대의 망명문학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2000년 봄,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연일 새로운 항일 시인의 출현과 그 유고작품의 소개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용정시 한 조선족 집 땅 밑의 항아리에서 자선시집 등 8권의 창작노트와 원고묶음을 포함한 일기장, 편지철 등의 육필원고들이 발굴되었다. 1945년 해방 일주일을 앞두고 피살된 심연수 시인이 역사에 드러난 대사건이었다. 이것은 동생인 심호수 씨가 일본관헌과 중국 홍위병의 눈을 피하려고 몰래 땅 속에 묻어둔 것이었다.

심연수는 1918년에 강릉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가족을 따라 연해주로 갔다가 연변의 용정에 정착한다. 이때 윤동주 시인도 용정에 살았으나 둘 간의 친분은 없어 보인다. 큰 길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윤동주 집안을 포함한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고, 반대편에는 심연수 집안을 비롯한 가난한 소작인들이 살고 있었다. 심연수의 시에는 남의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서글픔과 고난의 삶이 짙게 드러난다.

 

 

 

만주 / 심연수

 

 

잘 살려고 고향 떠나

못 사는 게 타향살이

간 곳마다 펼친 심하(心荷)

뜰 때마다 허실됐다

 

 

흐뭇할 뜰을 찾아

들뜬 마음 잡으려고

동해를 둘러서 어선에 실려

대인 곳은 막막한 벌판이었다

 

 

싸늘한 북풍받이 허넓은 곳

떼장막을 치고 누워

떠돌던 몸 쉬이려던 심사

불쌍한 유랑민의 꿈이었다

 

 

서글퍼 가엾던 부모형제

헐벗고 주림을 참던 일

지금도 뼈아픈 눈물의 기록

잊지 못할 척사(拓史)의 혈흔이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게 강탈당한 후, 탄압받던 독립운동 지사들과 일제의 토지수탈정책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이 대량 연해주와 만주 또는 중국으로 흘러들었다. 이들은 풍찬노숙의 유랑민들로서 이 가운데 많은 문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망명문학의 선구자는 역시 단재 신채호 선생일 것이다. 그는 언론인이며 사학자, 혁명지사로서 대륙을 떠돌며 틈틈이 작품을 써두었지만 시대상황으로 봐서 발표하지 못했다. 그가 왜경에게 붙잡혀 여순 감옥에서 옥사한 후 측근에 의해 육필원고로 전해온 유고까지 합쳐 자그마치 45편(소설 12, 시 27, 평론 6)이 전해지지만, 그는 한국 신문학사에서 기록되지 않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주체성이 관통하고 있다. 그의 <몽천(夢天)>, <을지문덕>, <최도통전>, <백제노승의 미인담>, <일이승(一耳僧)>, <이괄> 등의 소설작품이 대부분 역사적 인물의 전기물이다. 또한 골수가 사무친 반평생의 망명생활을 읊은 <백두산도중>, <추야술회>, <한나라 생각>, <북경우음>, <매암의 노래> 등의 시는 도저히 발표가 용납되지 않을 만큼의 민족적이고 저항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항일작품이다.

 

 

 

한나라 생각 / 신채호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

두 사랑 사이에 칼로 써 베면

고우나 고운 핏덩이가

줄줄줄 흘러내려 오리니

한 주먹 덥썩 그 피를 쥐어

한나라 땅에 고루 뿌리려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

봄맞이 하리라

 

 

 

당시의 항일운동은 즉각적인 투쟁과 민족교육을 통한 인재육성이라는 두 갈래로 이루어졌다. 이때 우리의 글과 문학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이 민족교육에 앞선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소위 망명문단을 만들어 동인지를 발간했는데, 1933년, 만주 용정에서 결성된 간도 망명문단 북향회(北鄕會)의 결성에 관한 증언은 이렇다.

 

“이 학교 영어교원 리주복의 지도 밑에서 문예인들이 회를 조직하였다. 처음 이 회의 정회원은 열도 채 안 되는 문인,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조선 여류작가로서 이미 저명하였던 강경애, 박화성과 그밖에 각 중, 소학교 교원 중에서 문예창작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담하게 되었다.”

 

북향회에서 발간한 동인지 북향(北鄕)은 30쪽 안팎의 얇은 것이었으나 시, 소설, 수필, 희곡을 망라한 종합문예지였고, 이 동인지를 필두로 출판활동이 활발하여 1941년 <싹트는 대지>, 그 다음해에 <재만조선시인집>으로 성숙한다. 이때 주목해야 할 작가로서 안수길이 있다. 안수길은 <북향>에 참여하고 <싹트는 대지>의 집필자가 되었으며 창작집 <북원(北原)>을 냈고 <북향보>등 한글소설을 연재하여 광복직전까지 망명문단을 지켰다.

 

 

 

용정 / 김달진

 

 

차창밖 두만강이 너무 빨러 섭섭했다

흐린 하늘 낙엽이 날리는 늦가을 오후

마차바퀴가 길을 내는 찔걱찔걱한 검은 진흙길

(중략)

 

 

시악시요 아 이국의 젊은 시악시요

아장아장 걸어오는 쪼막발 시악시요

흰 분이 고루 먹히지 않은 살찐 얼굴

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까

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까

 

 

황혼 길거리로 허렁허렁 헤매이는 흰옷자락 그림자는

서른 내 가슴에 허렁허렁 떠오르는 조상에의 그림자 -

나는 강남제비새끼처럼

새론 옛고향을 찾아 왔거니.

(후략)

 

 

 

1937년 9월 소련 연해주,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온 조선인들이 소련군에게 떠밀려 열차에 태워졌다. 이 해에 124개 열차로 17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 벌판에 뿌려졌다. 죽음은 다반사였다. 시베리아의 모진 바람이 그들의 울음을 삼켜버렸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우리의 글을 안고 조국강산을 노래한 문인들, 조명희, 강태수, 김기철, 조기천 등 그들의 모국어 사랑은 눈물겹고 조선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변함없었다. 구한 말 이래 연해주에서 간행된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될 무렵까지 한글신문들과 더불어 소련 공산당 집행부에서 출판한 작품집만도 15여 권에 이른다.

 

 

 

모국어 / 맹동욱

 

 

모국어

그의 품에 안길 때

그의 음향 속에 들 때

나는 활기를 펴노라

의젓이 영예을 느끼노라

 

 

나의 귓가에 쟁쟁거리고

나의 눈에 삼삼거리고

두뇌에 뜻을 두고

피방울 들끓게 하느니

진정 공덕의 선구자로다

이 밤에 늦어

새 금줄 종이에 박노라니

모국어는 나의 동반자

그러니 외롭지 않다

슬프지 않다

행복이 나를 쳐든다.

 

 

 

나는 조선사람이다 / 김준

 

 

나는 로씨야 원동

이만 강변 조선 사람이다

백두산 신령이 먹이지 못해

멀리 강 건너로 쫓아낸

할아버지의 손자로다

로씨야의 ‘마마’보다도

카사흐의 ‘아빠’보다도

그루시야의 ‘나나’보다도

조선의 ‘어머니’란 말이

내 정신인 뿌리 더 깊다

 

 

 

 

 

혈연 / 정장길

 

 

조국이란

고향집 문턱에서 시작되는가

대장부가 마흔 가까워

먼 추억이 식어가도

기쁠 때 그리운 건

내 자란 마음이요

 

 

괴로울 때 간절한 건

어머니 생각이어라

하여 조국을 어머니라 하는가

하여 조국의 품 어머니 품이런가

 

 

 

어머님에게 / 리진

 

 

그러나 오늘

우연히

안해의 눈귀의

주름살에 눈길이 가자

어머님 생각 갑자기 더욱

가슴에

치밀어 올라

같은 말이지만

다시 합시다 -

일 필하고 돌아가리니

다시 뵙게 될 날까지 부디

편히, 편히 계시소

마당에 심으신 무도

내가 뽑아드리리다......

 

 

필자는 한국 신문학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다. 문학이란 사람의 혼을 글로 담아내는 행위다. 지금 한국 신문학의 주류인 일제시대의 국내동경유학파를 배제하고 망명문학을 우리 신문학의 중심에 우뚝 세우고 싶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조국을 배신하는 오점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신사적인 수치는 너무도 많은 문인들이 변절했다는 사실이다. 일제시대 국내의 문인들 중에서 정확하게 민족을 위해 저항한 항일시인을 꼽으면 이육사, 심훈, 한용운 딱 세 명이다.(오세영, 20인의 시평참조) 그 외의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압제에 침묵하거나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처럼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의 논리도 있다. 그러나 백번을 애국하다가도 단 한 번의 배신으로 영원한 배신자가 된다는, 냉엄한 민족생존의 논리가 더욱 앞선다.

 

 

이번에 호주 시드니 한국문학협회가 창설되었다. 만약에 필자의 논리대로 한국문학의 정통이 일제시대의 망명문학에 있다면 호주 시드니 한국문학협회는 눈물겹게 고고하고 뿌리 깊은 우리 문학의 정통성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일이다.

이제는 망명문학이 아닌 변경문학이다.

 

이는 로마의 영토확장과 같은 한국 혼의 너름이며 세계화다. 천리를 달리는 파도의 끝이 바로 변경문학의 주역인 당신께 달렸고, 그 파도가 대지에 휘몰아쳐 기세가 넘칠지어다. 심연수 시인의 시로 글을 마감하며, 호주 시드니 한국문학협회 회장인 나향 이기순 작가와 그 회원께 감사드린다.

 

 

 

고집 / 심연수

 

 

고집을 써라 끝까지

티끌만한 너르럼을 보이지 말고

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마라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

그 장으로 식성을 고쳐 낼게

 

 

소금이 쉬어 곰팡이 피고

사탕이 썩어 냄새난다면

그건 고집 없는 탓이지

우기고 뼈딪다 꺾어진 것은 통쾌해도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2009, 여름

 

 

 

episode ;

3년 전 이 정문 작가가 '호주 한국문협 발족을 축하하며' 썼던 글이다. 오늘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다른 작가의 명의로 스크랩되어 있어서 정정訂正의 의미로 재스크랩을 해 둔다. 글 욕심이라 보기에도 그렇고 참…, 이런 경우를 뭐라 칭해야 할지 뜨악할 뿐이다. 책으로 엮기 전에는 글쓴이가 바뀌어도 '할 말 없슴' 해야 할지. 혹여 실수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양심이란 건 언제 다 국 끓여 드셨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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