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계간 『문학동네』 2011 겨울호 발표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의 시편들 (0) | 2012.06.01 |
---|---|
김사인 <통영> 외 (0) | 2012.05.31 |
황경신 <타자기> (0) | 2012.05.25 |
김인희<돌아오지 않는 강> 외 1편 (0) | 2012.05.22 |
신용목<공터의 달리기>외 (0) | 2012.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