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황경신 <타자기>

미송 2012. 5. 25. 12:00

 

황경신 작가의 타자

 

 

스물일곱 살의 스티브 잡스가 마흔한 살의 존 바에즈를 만나 연인 관계가 됐을 때, 존에게는 열네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존이 지나가는 말로, 아들에게 타자 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스티브에게 말했다. "타자기를 가지고? 하지만 타자기는 구닥다리잖아."

당시 매킨토시를 개발 중이던 스티브의 말에, 존은 잠시 당황했다. 스티브 역시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잠시 동안의 불편한 침묵이 지나간 후 존이 말했다.

"타자기가 구닥다리라면, 나는 뭘까?"
훗날 존 바에즈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는 둘 다 빤히 알고 있었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고 기운이 쭉 빠졌다"라고 얘기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스티브 잡스가 구닥다리라고 일축한, 그래서 존 바에즈에게 시대의 변화와 세대의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미래는 없음'을 상기시킨 타자기도 한때는 한 시대를 뒤흔들 운명을 품고 태어난 세기의 발명품이었다.

최초의 타자기는 1873년, 무기 제조와 농기구, 재봉틀을 생산하던 미국 레밍턴사에 의해 만들어졌다(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를 본거지로 애플사를 차린 것은 1976년으로, 불과 100년 후이다). 레밍턴사는 새로 출시한 타자기를 마크 트웨인에게 보냈고, 그것을 이용해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레밍턴사가 타자기를 대량생산하기 이전, 즉 19세기에도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여러 가지 모양의 타자기를 고안했다. 어떤 발명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글씨 쓰는 피아노'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자로 치는 속도가 오히려 느리다는 것이었다. 타자기에 대한 연구는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되어, 레밍턴사는 인쇄업자이자 발명가인 숄즈의 연구를 바탕으로 마침내 성능이 괜찮은 타자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다. 숄즈는 '52번째 사람'이란 별칭으로 불렸는데, 52번째 연구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타자기가 제 기능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그래서 앤티크 스타일의 카페 같은 곳에서 소품으로나 이용하는 타자기를, 나도 한때 가지고 있었다. 그리 날렵하거나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는 디자인의 묵직하고 시커먼 그 타자기는, 주로 밥상 역할을 겸하는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책상 옆에는 푸른색 철제로 짠 책장이 위태롭게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턴테이블이 딸린 조그마한 오디오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공간에 일인용 담요를 펴면,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정도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내가 혼자 지내던 그 방은 번듯한 방들이 들어서고 난 다음, 어쩌다 생긴 자투리 공간에 어설프게 비집고 들어선 것이라서 네모반듯한 형태가 아니라 두 개의 긴 빗변을 가진 사다리꼴, 그러니까 모서리가 둥근 형태의 메트로폼 모양이었다.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방문을 닫으면 작은 상자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세상과 통하는 창을 가진 컴퓨터는 머나먼 세계의 우주선 같은 존재였고 스마트폰은커녕 집 전화도 없었으며 텔레비전은 누가 그저 준대도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준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고 유일한 도구는 타자기였다.

책의 경우에는 읽고 싶은 것을 한 권 골라 펼쳐드는 것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른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가능하다. 책이 안내하는 길로 따라가면 되고, 그 길에서 만난 것들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상상하면 된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보여주는 대로 보고, 보이는 만큼 보는, 다소 소극적인 소통이다.

타자기의 경우에는 청자와 화자가 뒤바뀐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고, 주제를 제시해야 하고, 흐름을 잡아야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쪽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타자기가 그려내는 세계는 영원히 백지 상태로 남는다.

손끝으로 가볍게 터치하는 것만으로 작동이 되는 컴퓨터의 키보드와는 달리 타자기의 자판은 손가락에 제법 힘을 싣고 두드려야 글자를 찍어낸다. 행을 옮길 때마다 오른쪽에 달린 손잡이를 꾹 눌러 힘껏 밀어줘야 하고, 한 장의 종이가 가득 차면 그것을 빼내고 다른 종이를 끼워야 한다. 오자가 나면 수정액으로 그 부분을 지운 다음 조심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활자를 다시 쳐넣을 수 있지만(물론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문장을 고치고 싶다면 지금까지 작업한 것들을 파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불편하고 까다로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쪽이 편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굳이 타자기를 쓸 일이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으므로 깨끗한 종이에 깔끔한 서류를 만들 일도 없었고, 리포트를 타자기로 작성해오라는 교수님도 없었다. 가난한 자취생이었으니 새하얀 A4 용지와 타자기 리본을 구입하는 것도 가뿐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타자기 자체도 '어디 한번 사볼까' 하고 터덜터덜 걸어가서 넙죽 사 안고 올 수 있을 정도의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타자기가 좋았다. 뭐가 좋았는지 설명해보라면 잘 못할 것 같지만, 좌우지간 그걸 가지면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더러 글을 쓰라고, 원고를 마감하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후로도 꽤 오래 없을 것 같았지만, 조금씩 모은 돈으로 중고 타자기 하나를 구입했을 때는 제법 감회가 어렸다(꽤 긴 세월이 흐른 후 내가 갖게 됐던 최초의 컴퓨터 혹은 불과 1년쯤 전에 손에 넣었던 스마트폰과 비교하자면, 열 배 정도 큰 감회였다).

나는 그 타자기로 시를 썼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잠시 숙연한 심정이 된다. 동시에 이런 문장을 써도 괜찮은 것일까, 망설여진다. 그때 내가 쓴 것을 과연 시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나는 나의 진심과 열정을 시에 바쳤노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스물한 살, 그리고 스물두 살이었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갈망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의 미래는 너무나도 불투명했기 때문에. 나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시를 썼다.
삶의 모든 색채가 날아가버린 듯한 새하얀 종이 앞에서 캄캄한 어둠을 끌어안고, 주저하는 열 개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눌러 하나의 글자를,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럴 때면 종이 박스 같은 내 작은 방은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잠수함이 되기도 하고, 무한한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선이 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고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리고 나 혼자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녹이 슨 철제 책장과 곰팡이가 잠식해 들어가는 벽지의 세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울렸다. 그건 세상과 내가 공명하는 소리,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타자기는 단순한 타자기가 아니라 나의 시였고 나의 노래가 됐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직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세상에서 이룬 일들이 고맙고 그 덕을 우리가 누리고 있지만, 고요한 시간을 도무지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가끔 슬퍼. 이제 조금 느리게 세상이 흘러갔으면 좋겠어."

그래, 고요한 시간. 우리가 저 먼 과거에 두고 온 것은 고요한 시간이었다. 고요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인류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류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다면 자본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립된 상황을 견디지 못하며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고 싶어 한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세상과 격리시키기 위한 것이고, 갇힌 자들이 감옥 안을 기어 다니는 벌레에게라도 말을 거는 것은 소통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독립된 영혼을 갖고 자급자족할 수 있으며 그런 방식의 삶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으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경지에 이를 틈조차 없다. 텔레비전이나 게임, 트위터 같은 것에 중독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독자들의 공통점은 고요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고요한 시간 안에는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외부 세계가 채워놓은 가벼운 약속들, 허황된 소문들, 뿌리 없는 꿈들이다. 돌아보면 어디에도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토록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 속에서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는 무의미한 존재를 직면하라고, 고요한 시간은 강요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무(無)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아마 그런 것이었으리라. 내가 나의 작은 방에서 오로지 타자기만 가지고 어떤 세계 하나를 창조할 때, 타자기가 내게 제공한 것은 빅뱅 이전의 우주만큼이나 텅 빈 무(無)였다. 내가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하고 그것을 견디어냈던 것은 내가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 식으로 말하자면, 그곳에는 단지 하드웨어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비록 어설프고 가치가 없다 해도 어찌 됐거나 내가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자 고요한 시간은 더 이상 견디어내야 할 것이 아니라 즐거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됐다.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타자기는,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기에 사라졌다. 글을 쓰는 일이 내 직업이 됐으나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깊은 밤, 잠에서 문득 깨어난 시간, 우주에서 홀로 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을 견디는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탐색한다. 그것이 나를 채워줄 거라는 기대도 없이. 결국은 조금 더 쓸쓸해질 것을 잘 알면서. 그렇게 하여 나는 세계가 안겨주는 혹은 스스로 세계라고 우기는 어떤 허상이 안겨주는 그림자 안에서 다시 외로워진다.

한때 나는 그 외로움으로 시를 썼고, 텅 빈 나 자신을 품고 외로움의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기꺼이 그것을 견디어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차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내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했다. 비록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불편하고 까다로운 세계가 신중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준 길이었다.

이제 나는 고요한 시간을 얻기 위해, 아니 쟁취하기 위해 세계와 싸워야 한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실시간 뉴스와 검색어가 명멸하는 컴퓨터를 끄고, 한 권의 책과 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광고와 말초적인 드라마가 범람하는 텔레비전을 끄고, 하나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생각을 하기 위해 속도가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세계를 끄는 일이 나의 투쟁이 됐다. 무(無)의 세계는 언제나 두렵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 텅 비고 고요한 세계에서 투박한 소리 하나가 들린다.

타닥타닥.
그것은 구닥다리인 내가, 구닥다리인 세계와 소통하는 소리이다. 서툴고 힘겹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그러나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가치를 되찾기 위해.

 

 

 

황경신 작가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무크」, 「행복이 가득한 집」, 「이브」등의 기자로 활동했다. 

펴낸 책으로는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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