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백석의 시편들

미송 2012. 6. 1. 07:49

통영(統 營 )1 / 백석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아직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천희: 행여 '처녀'를 '처니'라 하는 경상도 발음을 백석이 은유적으로 엮은 건 아니려나 싶은데

뱃사람 많은 통영에선 '서방잡아 먹은 년'을 뜻했다고도 한다.

백석의 '통영' 첫번째 작품은 그의 첫 시집 '사슴'에 수록되었는데 그 때의 통영은 같은 시집에 수록된 '가키사키의 바다'와 비슷한 느낌이다. 모두 바다에 '비'가 내리고 '굴껍지/곱조개'와 '옛날이 가지 않는 천희/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나오고 '김냄새/미역냄새'가 난다. 백석은 일본의 항구나 한국의 항구는 모두 비슷한 이미지였다. 백석에게 있어 통영 역시 그 당시에는 '낡은 항구'의 이미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엿다. 시에서 통제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시절 남쪽의 어느 가난한 항구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그의 '통영'의 2번째 시는 확연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주목할 점은 백석의 시를 보면 시제목이 중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통영'이라는 시 제목은 두번을 넘어 3번째 같은 이름으로 붙여지고 있으니 이 또한 백석에게 있어 통영이 가지는 남다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각설하고 백석은 이제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백석은 다시 서울에서 일상의 일을 계속하게 되었고 시인이 된다.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이 된 백석은 항상 마음 한 켠에 '난'이라는 통영여자를 묻어 두고 있었으며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백석의 두번째 통영방문에서의 두번째 '통영'이라는 시가 나오는데 두번째 '통영'의 시는 첫번째 백석이 지은 '통영'의 시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랑하는 이가 사는 곳을 그리는 젊은 청년시인의 마음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두번째 통영방문에서 백석은 사랑하는 여인 '난'을 만나지 못한다. 난은 그 당시 여화고를 다니는 신여성으로서 방학이 끝나고 고향 통영에서 서울로 올라간지 몇일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서로 길이 엇갈린 백석은 그 아쉬운 마음을 그의 두번째 '통영'이라는 시에서 한껏 표출하고 있으며 난이 살던 마을, 명정골까지 찾아가 그 애틋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보면 첫번 째 '통영'이 유월에 김냄새가 나는 저녁비가 내리는 쓸쓸한 풍경이라면, 두 번째 '통영'은 북소리가 들리고 뱃고동이 들리는 활기찬 통영 풍경이 펼쳐진다.


통영(統營)2 / 백석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은銀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이 시는 백석이 1936년 1월 23일자 조선일보에 발표를 했다. 그 해 1월 20일에 시집이 나오고 29일에 시집출판기념회를 가졌던 백석은 아마 시집이 나오기 전에 통영을 다녀간 것 이리라. 백석의 통영행은 (구)마산 선창에서 배를 타고 통영항으로 왔야만 했다. 겨울바다였을 것인데, 백석은 통영 바다가 펼치는 멋과 맛에 반했다. 그래서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을 남긴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통영이라는 곳이리라.

두번째 '통영' 시의 후반부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 사람을 생각한다' 등의 구절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백석은 분명 통영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누군가란 바로.. 친구 신중현이 소개해준 그 통영여자 일터.

당시 백석이 좋아했던, 그 당시 명정골 396호에 살고 있던 통영여자를 만나러 왔으나 그녀는 개학준비를 하느라 서울로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래서 백석은 그녀가 사는 명정골을 찾아갔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백석도 그녀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을 것이며 그녀의 사는 마을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두번째 '통영' 시는 백석이 통영을 다녀왔다는 증거처럼 자신이 근무하던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를 했다. 서울에서 그 시를 읽었던, 공개구혼 같은 시를 읽었던 그 통영여자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 것인가.

시 구절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이라는 구절이 잇는데 ..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는 대목에서 백석은 난이라는 여자가 자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 듯 해서 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초조한 마음을 그려낸 것인지.. 아니면 자기에게 시집을 오라고 간접적으로 노래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구절 끝에.. '평안도' 아낙을 등장시킨 것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커지 않나 싶다.

그러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직장을 조선일보에서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옮긴 백석은 1936년 12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난의 부모를 찾아가 난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말하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난은 그의 절친한 친구 신중현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신중현은 파혼상태였기에 난과의 결혼이 가능했다.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사랑을 잃은 백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 그런 마음을 통영에서 서울로 가는 마지막에 남긴 백석의 시 '통영' 그 셋번째 작품에서 어렴풋하게 짐작해 본다. 하지만 이 시는 백석이 난의 집에 청혼을 하러 가기 9개월전에 지은 시로서 아마도 그의 사랑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을 짐작이라도 했을까..? 세 번째 '통영' 시는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는 백석의 입다문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는 4편의 남행시초 중 왜 통영에서 이토록 절제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사랑의 모든 것을 미리 예감하였던 것일까?

 

통영(統營) / 백석

- 남행시초 2

 

통영장 낫대들었다

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함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저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루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큰 장이었던 통영장을 구경하면서도, 품바타령을 들으면서도 그는 열 이레 달을 보면서 '판데목'을 조용히 지나간다. 통영장의 흥청거림도 품바타령의 흥겨움 앞에서도 백석은 객관적인 시선만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남행시초에서 보여주었던 마음의 찬사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가며/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창원도), '어쩐지 당홍치마 노란저고리 입은 새악시들이/웃고 살을 것만 같은 마을이다'(고성가도),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삼천포)와는 달리 백석은 차분해져 있다. 무슨 까닭인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고장마저도 아름다워지는 건 시인만이 가지는 특색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느낌을 글로서 잘 표현하는 건 시인들이 가지는 특색이라 생각한다.

사랑했던 여인, 난이 살고 있던 이 곳 통영, 먼 서울에서, 구마산 선착에서도 배를 타고 와야만 올 수 있었던 곳.. 통영, 그 통영을 너무나 사랑해 같은 제목으로 3개의 시를 남긴 천재 시인 백석.

1938년 백석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만 1940년 만주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남쪽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백석은 우리 문학사에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은 인사가 되고 만다.

오늘도 명정골의 샘물은 맑디 맑음을 자랑하지만 명정동 산복도로가 나는 바람에 충렬사와 명정 우물 사이가 도로로 인해 떨어져 있어 새로 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세월만큼 시인 백석이 아직까지도 충렬사 그 돌계단 위에 서서 사랑하는 여인 난이 명정골 우물에서 빨래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 듯 하다. 너무나 애절한 사랑을 잃은 백석의 마음을 필자는 100% 알지 못하나 백석은 이런 시를 남겼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내가 살튼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 백석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백석이 사랑한 여인 난은 후에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오래 살았다는 말도 있다. 
명정골은 지금의 통영시 명정동이다. 이순신장군을 모신 사당이 '충렬사'인데 충렬사 인근에 명정동이 자리하고 있다. 
명정(明井)동의 이름은 맑은 우물이 있기 때문인데 그 우물도 그대로 남아있다. 명정골 우물터에는 2개의 우물이 있다. 하나는 일정(日井)이고 또 하나는 월정(月井)이다. 통영사람들은 그 일(日)과 월(月)을 합쳐 명(明)이라 불렀다. 통영사람들은 일정의 우물물은 충무공의 향사(享祀)에 사용했고 월정의 우물물은 민가에서 사용했다. 
백석은 통영에서 서울로 간 뒤 실연의 아픔으로 한 기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편지 - 백석

 

이 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닭이 울어서 귀신이 제 집으로 가고 육보름날이 오겠습니다. 이 좋은 밤에 시꺼먼 잠을 자면 하이얗게 눈썹이 센다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육보름이면 옛사람의 인정 같은 고사리의 반가운 맛이 나를 울려도 좋듯이, 허연 영감 귀신의 호통 같은 이 무서운 말이 이 밤에 내 잠을 쫓아버려도 나는 좋습니다.

고요하니 즐거운 이 밤 초롱초롱 맑게 괸 수선화 한 폭을 들여다봅니다. 들여다보노라니 그윽한 향기와 새파란 꿈이 안개 같이 오르고 또 노란 슬픔이 냇내 같이 오릅니다. 나는 이제 이 긴긴 밤을 당신께 이 노란 슬픔의 이야기나 해서 보내도 좋겠습니까.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되어 젊디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 앓아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섣달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이 낡은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같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해 유월이 저물게 실비 오는 무더운 밤에 처음으로 그를 안 나는 여러 아름다운 것에 그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산새에도 해오라비에도 또 진달래에도 그리고 산호에도…….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서 아름다움이 닮은 것을 골라낼 수 없었습니다.

총명한 내 친구 하나가 그를 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는 나도 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나의 수선이 시들어갑니다. 그는 스물을 넘지 못하고 또 가슴의 병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만하고, 나의 노란 슬픔이 더 떠오르지 않게 나는 당신의 보내주신 맑고 고운 수선화의 폭을 치워놓아야 하겠습니다.

 

밤이 아직 샐 때가 멀고 또 복밥을 먹을 때도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어머니의 바느질그릇이 있는 데로 가서 무새헝겊이나 얻어다가 알록달록한 각시나 만들면서 이 남은 밤을 당신께서 좋아하실 내 시골 육보름밤의 이야기나 해서 보내도 좋겠습니까.

육보름으로 넘어서는 밤은 집집이 안간으로 사랑으로 웃간에도 맏웃간에도 누방에도 허청에도 고방(광)에도 부엌에도 대문간에도 외양간에도 모두 째듯하니 불을 켜놓고 복을 맞이하는 밤입니다, 달 밝은 마을의 행길 어디로는 복덩이가 돌아다닐 것도 같은 밤입니다. 닭이 수잠을 자고 개가 밥물을 먹고 도야지 깃을 들썩이는 밤입니다.

새악시 처녀들은 새 옷을 입고 복물을 긷는다고 벌을 건너기도 하고 고개를 넘기도 하여 부잣집 우물로 가서 반동이에 옹패기에 찰락찰락 물을 길어오며 별 같은 이야기를 재깔재깔하는 밤입니다.

 

새악시 처녀들은 또 복을 가져오느라고 달을 보고 웃어가며 살기같이 여우같이 부잣집으로 가서는 날쌔기도 하게 기왓골의 기왓장을 벗겨오고 부엌의 솥뚜껑을 들어오고 곱새담의 짚날을 뽑아오고……. 이렇게 허물없는 즐거움 속에 끼득깨득하는 그들은 산에서 내린 무슨 암짐승들이 되어버리는 밤입니다.

그러다는 집으로 들어가서 마음 고요히 세 마디 달린 수숫대에 마디마다 콩 한 알씩을 박아 물독 안에 넣는 밤인데, 밝은 날 산 끝이라는 웃마디, 중산이라는 가운데 마디, 해변이라는 밑마디의 그 어느 마디의 콩이 붇는가를 보고 그 어느 고장에 풍년이 들 것을 점칠 것입니다.

그러다는 닭이 울어서 새날이 되면 아홉 가지 나물에 아홉 그릇 밥을 먹으며, 먹으면 몸 쏠쐐기가 쏜다는 김치와, 먹으면 김 맬 때 비가 온다는 물을 자꾸 먹고 싶어 하는 밤입니다.

 

이렇게 해서 육보름의 아침이 됩니다. 새악시 처녀들은 해뜨기 전에 동리 국수당의 스무나무가지를 쪄오래서 가시가시에 하이얀 솜을 피우고, 그 솜밭 속에 며칠 앞서부터 스물이고 서른이고 만들어놓은 울긋불긋한 각시와 새하얀 할미를 세워서는 굴통담에 곱새담에 장독담에 꽂아놓는데, 이렇게 하면 이 해에는 하루같이 목화밭에서 천근 목화가 난다고 믿는 그들의 새 옷 스척이는 소리도 좋게 의좋은 짝패들끼리 끼리끼리 밀려다니며 담장마다 머물러서는 목화 따는 할미며 각시와 무슨 이야기나 하는 듯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닭이 우나?) 아 닭이 웁니다. 나는 이만 이야기를 그치고 복밥을 기다리는 얼마 아닌 동안 신선과 고사리와 수선화와 병든 내 사람이나 생각하겠습니다.

 

<조선일보 1936. 2. 22>

 

육보름날- 음력으로 매월 열엿새 날.

웃간- 윗방

맏웃간- 가장 위쪽에 있는 방

누방_ 다락방

살기- 삵괭이

곱새담- 풀, 짚으로 엮어서 만든 담

솔쐐기-송충이

스무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굴통담- 굴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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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 백석

 

동해여, 오늘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 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 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강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들이 누웠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 온 것이겠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있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월이 오기 바쁘게 그대한테로 가야 하겠습네.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해가우손이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지. 하기야 또 버들개 봉구이가 좀 좋은가. 횃대 생선 된장지짐이는 어떻고.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 아니지만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함소주 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복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으레히 오는 노랑 바탕에 까만 등을 단 제주 배 말입네.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많아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뱅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 언제 어느 모롱고지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둥……, 참 말이 많지.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칠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제주 색시하고 살렵네.

 

내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해도 미역 내음새에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네.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낱낱이 키가 자라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아내를 잃고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있는 것과, 그리고 그 영어를 잘하는 총명한 4년생 금이가 그대네 홍원군 홍원면 동상리에서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

 

<동아일보 193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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