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사인 <통영> 외

미송 2012. 5. 31. 18:58

 

통영 / 김사인

 

설거지를 마친 어둠이

어린 섬들을 안고 구석으로 돌아앉습니다.

하나씩 젖을 물려 저뭅니다.

 

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

김밥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들께서

억세고도 정겨운 통영 말로 긴 봄장마를 한마디씩 쥐어박으시며

흰 뼈들 다시 접으시며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이래봬도

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

앳된 보슬비 업고 걸리며 민주지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 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쫓아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도 지나왔습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루하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 같은 것이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실천문학』2010년 봄호

 

 

 

 '별거 아님'의 참된 어려움 / 김사인

 

                            

무슨 이야기를 쓰면 보기에 그럴듯할지 며칠을 두고 생각을 굴려봐도 할말이 없다. 시를 몇 편 쓰지도 못한 주제에 시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낯뜨거운 노릇이려니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문학소년적인 습작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럭저럭 시 주변을 맴돌아온 게 몇 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거다 싶게 시란 놈의 멱통을 꽉 쥐어보지도 못했으며, 차라리 시란 놈에게 먹혀보는 게 어떨까 생각 들 때도 있었으나 왠지 비굴한 일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시와 서로 길들이지 못하고 저만치서 힐끔힐끔, 그립지만 자존심 때문에 서로 말 못 거는, 풋내나는 첫사랑 비슷한 사이로 아직도 지내는 형편이니 시에 대해 이렇다 하게 내놓을 어른스런 소신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시에 대한 그리움이나 그 그리움의 순도를 놓고서라면, 누구에게라도 앞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 앞에 서면 갑자기 말더듬이가 되고 마는 이 몹쓸 병이 언제쯤이면 나을지 모르겠지만, 마침내는 시가 면사포 쓰고 나에게 시집오고 말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저, 올해에는 좀더 부지런히 쓰리라 작정을 해볼 뿐이다. 누구에겐들 마음에 맺힌 것이 없으며 빚이 없을까마는 내게도 그런 게 조금은 있다. 나를 때 벗기고 양복 사 입혀 서울로 올려보내서, 이만큼 키워준 내 고향동네에 우선 나는 빚 갚아야 한다. 대청댐 바람에 동네가 수몰되어 뿔뿔이 흩어지면서도 아야 소리 한번 못 했던 이들, 보은군하고도 회남면 사람들. 글줄이나 쓰게 '출세'한 나는 미상불 그들의 언론기관이다. 제 앞가리기에만 급급했던 그간의 배은망덕을 올해부터는 좀 탕감하고자 한다.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고달프던 외가, 지지리 복도 없는 집안 식구들,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나는 벗들. 눈을 조금만 더 넓게 뜨면 왜 그들뿐이리오. 내 무사한 하루 세끼와 편한 잠자리가 세상에 가득한 허기지고 어수룩하고 서러운 이들의 덕분임이 분명한데, 어떻든 올해에는 좀더 부지런히 쓰고자 한다.

 

내 손안에 담싹 잡혀주지 않는 시란 놈으로부터 수도없이 야속한 꼴을 당하면서, 또 세상 보는 눈이 조금씩 뜨이면서, 나는 시란 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보기로 작정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시가 뭐 별스럽게 신비하고 어려운 것인가, 시도 사람이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아닌가, 저 혼자만 알아들을 얘기, 대단히 머리 좋은 사람들끼리나 알아볼 얘기가 시라면 나 같은 것은 시 못하고 말지 별수 없다, 저 생긴 대로 살아가는 얘기, 그 가운데 깊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마음 모두어 정성스레 쓰면 그게 시지 뭔가. 대략 이런 생각이다. 저 재주 없는 것은 부끄러워 않고 되레 시를 두고 애꿎은 트집이라고 누가 나무라신다면, 조금은 뒤가 구려 찔끔하겠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별거 아닌 시'를 제대로 꾸리기도 나는 힘겹다. 그러니 어느 세월에 눈이 번쩍 띄게 재기 넘치는 시, 화려하게 목청 높은 시를 써보랴. 그러나 요즈음엔 나도 더 뻔뻔스러워져 이런 유식을 앞세워 넘어간다. "가장 상식적으로 상식을 넘어서는 일,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창조에 값하는, 비상한 자기 절제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낯뜨거운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시를 별거 아니게 생각하기를, 그러하되 그 별거 아님의 참된 어려움을 잊지 말기를 내게 당부하고는 있다. 머리만으로, 손끝만으로, 또는 목청만으로 시를 꾸려내게 되는 유혹과 함정에 제발 빠지지 말아주기를, 덤덤한 얘기를 덤덤하게 쓰는데 만족해주기를 거듭거듭 내게 당부하고 있다. 밥과 같은 시를 쓰라고 당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까짓놈의 시 개나 물어가라지 하고 전적으로 당당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내가 수습 딱지를 떼고 제대로 시인이 되는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의 멱살을 붙잡는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이 시에 아부하며 쫒아다닌다거나 '시인' 이란 이름에 먹힐 때, 그건 볼장 다 본 거라고 나는 믿는다. 정작 당하면 또 어떨지 모르겠으나 부디 내가 시에 대해 비굴해지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란다. 비굴한 자가 무슨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랑 없이야 어떻게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난들 열렬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그것들 만나지 못하고야 무엇으로 시가 시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에 기대어 시의 참다움을 보장받을 것인가.

 

 ㅡ《한국문학》 1986년  2월호

 

 

김사인

충북 보은 출생. 1982년  『시와경제』로 작품활동.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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