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편들

미송 2012. 6. 4. 10:50

 

1

뉴욕에서 달아나다: [문명을 향한 두 개의 왈츠 - 작은 빈 왈츠]

 

 

빈에는 열 명의 소녀와 하나의 어깨가 있다.

그 어깨 위에서 박제된 비둘기 숲과 죽음이 흐느끼지.

성에 낀 박물관에는 아침 잔영이 남아 있지.

천 개의 창이 있는 살롱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쉬잇, 이 왈츠를 받아 줘.

이 왈츠, 이 왈츠, 이 왈츠,

바다에 꼬리를 적시는

코냑과 죽음과 “좋아요!”의 왈츠.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우중충한 복도 언저리,안락의자와

죽은 책까지;여기는 백합의 어두운 다락방,

달이 있는 우리의 침대에서

거북이가 꿈꾸는 춤 속에서, 사랑해.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부서진 허리의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는 너의 입과 메아리들이 노는

네 개의 거울이 있지.

소년들을 푸른색으로 그리는

피아노를 위한 하나의 죽음이 있지.

지붕 위로는 거지들이 있지.

통곡의 신선한 화관들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내 품 속에서 죽어가는 이 왈츠를 받아 줘.

 

왜냐하면 널 사랑하니까, 널 사랑하니까,

내 사랑아, 아이들이 노는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따스한 오후의 소란한 소리들을 듣고

헝가리의 오래된 빛들을 꿈꾸고,

네 이마의 어두운 고요를 느끼고

눈빛 백합들과 양떼들을 본단다.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영원히 널 사랑해”하는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서 나는 너와 춤을 추리라,

강의 머리를 그린 가면을 쓰고.

히아신스 꽃이 가득한 나의 강변들 좀 봐!

내 입을 너의 두 다리 사이에 두고,

내 영혼을 사진들과 수선화들 사이에 두리라.

그리고 네 발등의 어두운 물결에는

내 사랑아, 나의 사랑아,

바이올린과 무덤, 왈츠의 테이프를 선사하리라.

 

(민용태 )

 

 

달이 떠오르니

달이 떠오르니
교회 종소리 잦아들고
떨기나무 무성한
오솔길들 드러난다

달이 떠오르니
바다가 온 뭍을 덮고
내 가슴 망망대해의
작은 섬 같아라

둥근 달 아래에서는
아무도 귤들을 먹지 않으리
달빛 아래 어울리는 과일은
푸르고 차가운 것들

달이 모두 똑같은
일백의 얼굴로 떠오르니
주머니 속 은전(銀錢)들
갑자기 흐느낌을 터뜨리네

(로버트 블라이 譯)

 

 

3

진심이다

 

진실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 이토록 힘이 들까!

너를 향한 사랑 때문에 바람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모자가 아프다.

누가 나에게 내 허리의

이 허리띠를 사 갈까?

누가 이 하얀 실오라기

슬픔을 사서, 하얀 손수건을 만들까?

진실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 이토록 힘이 들까!

 

 

 

4

경악

 

죽은 사람이 거리에 쓰러져 있습니다.

가슴에 칼을 맞고,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나 가로등이 떨고 있었는지요!

어머니

작은 가로등이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요!

밤과 아침 사이에 아무도

차가운 공기를 향해 열려있는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이 죽은 사람은 거리에 쓰러져있습니다.

가슴에 칼을 맞고, 왜.

아무도 그를 몰라야 합니까?

 

(정현종 )

 

 

5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오렌지 나무의 노래

 

나무꾼이여

내게서 그림자를 잘라 주오

열매 없는 나를 봐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오

 

나는 왜 거울 속에서 태어났을까?

낮은 내 주위를 원을 그리며 돌고

밤은 그 모든 별들로

나를 그대로 본뜬다.

 

 

내 모습 보지 않고 살고 싶구나.

개미와 엉겅퀴가

내 잎사귀와 내 새들이라

꿈꾸고 싶구나.

 

 

나무꾼이여

내게서 그림자를 잘라 주오

열매 없는 나를 봐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오

 

 

(W. S. Merwin )

 

 

6

어떤 영혼들은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끼워 놓은 아침들을,

그리고 꿈과

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

열정의 환영(幻影)들로 괴로워 한다.

따뜻하 - 먹어 버린 과일들.

그림자의 흐름과도 같이

멀리서 오는

타 버린 목소리의 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

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

오래 익어왔다 ; 그건 시든다

불가사의로 어두운 채.

환각에 침식당한

어린 돌들은

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

모든 돌은 말한다:

 

"신은 멀리 계시다!"

 

 

7

강의 백일몽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을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허나 그건 우리한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걸.

반딧불들의 세계가

내 생각에 엄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리고 축소 심장이

내 손가락들에 꽃핀다.

 

 

 

 

 

 

 

8

말이 울기 시작해. 다리는 다쳤고 갈기는 얼어붙었으며, 두 눈 속에는 은으로 된 칼이 있어.

강으로 내려갔어. 저런, 어떻게 내려갔다지? 피는 물보다 더 세게 흘러갔어.

 

입도 뻥긋 못하고 자기 자신을 불태운다는 건 우리가 우리에게 씌울 수 있는 가장 큰 벌이지.

자존심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고, 너를 보지 않고 밤마다 깨어 있는 너를 그냥 내버려 둔 게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지?

아무 소용도 없었어! 내 위로 불을 끼얹는 일이었어! 넌 시간이 약이고 별들이 덮어 준다고 믿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사실이 아니라고. 일이 인간이 알 수 없는 어떤 심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걸 어쩌지 못해!

 

내 혀에 어떤 유리 파편이 박힌단 말인가! 난 잊고 싶었어, 그래서 네 집과 우리 집 사이에 돌담을 쌓았어.

사실이야. 너 기억 안 나? 그리고 내가 널 멀리서 봤을 때 내 눈에 모래를 뿌렸어. 하지만 말을 타면 말은 네 집으로 갔어.

은으로 된 바늘로 내 피는 검게 되었고, 꿈은 내 육신을 독초로 가득 채웠어.

내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땅과 너의 가슴과 머리카락에서 나는 그 냄새 때문이야.

 

제가 다른 남자랑 갔기 때문이죠, 제가 갔기에! (고뇌에 차서) 당신도 갔을 겁니다.

난 안팎으로 상처 받고 타 버린 여자였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약간의 물이었습니다.

그 물에서 나는 자식과 땅과 건강을 기대했죠. 하지만 다른 사람은 등심초가 바람에 살랑대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노래를

내게 가까이 가져다준 나뭇가지로 가득 찬 어두운 강이었습니다. 나는 차가운 물의 아기 같았던 당신의 아들과 함께 달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나의 시든 가련한 여인의, 불로 애무당한 한 소녀의 상처 위로 서리를 내리고

내가 걷지 못하도록 수백 마리의 새들을 보냈습니다. 난 원하지 않았어요. 잘 들으세요! 난 원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아들이 나의 목적이었습니다. 난 그를 속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의 팔이 나를 파도처럼,

노새가 머리로 박듯이 나를 끌었습니다. 그 팔은 내가 늙었어도, 당신 아들, 그리고 그들의 아들까지

모두 내 머리채를 쥐어뜯었을지라도 언제나, 언제나 나를 끌어당겼을 겁니다.

 

詩集 '피의 혼례 Bodas de Sangre' 

 

 

 

 

9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여행지에서 나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 만물을, 차창 밖을 지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곧 다시 만나요, 손을 흔들고 헤어질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선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내가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나를 생각한다.

여행지에선 내가 누구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삶 속에선 제발 나 좀 알아봐달라고 부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나는 그 고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낼 줄 안다.

그런데 삶 속에선 내 고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본다.

여행지에서 나는 나 자신이 이방인임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행여라도 이방인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

여행지에서 나는 거리의 악사들과 가장 자유로운 이들과 가장 슬퍼 보이는 이들과

이제 막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들과 같은 소망을 갖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친절함을 기대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타인과 소망을 나누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오래전 누군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앉았던 식당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존재와 남의 존재가 연결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연결이 아니라 나와 남의 분리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가장 용기 있는 자들과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자들과

가장 정이 많은 자들과 가장 고통받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가장 득이 되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 나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여행지에서 나는 해의 뜨고 짐 같은 가장 단순한 풍경에서도 위대한 지구의 운동 법칙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눈앞의 일에 급급하느라 어떤 법칙에도

진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로르카의 散文,<인상과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