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천양희<말에 대한 생각>외1편

미송 2012. 6. 6. 21:06

말에 대한 생각 / 천양희

 

말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가 그토록 말에 봉사하사

말솜씨와 말놀이를 말벗처럼 알았더니

어느덧 말꾼이 되었다

말에 몸 바쳐

예순아홉 번 허울을 쓴 내게

굽이굽이 고비를 넘게 하고

길고도 짧은 반성문을 쓰게 하네

가끔 나는

반성문을 반송문으로 잘못 읽는다

모든 것은 오래되면 변하기 마련인데

말만은 그렇지가 않다

세상에 나쁜 꽃말은 없고

좋은 헛말도 없는 것인지

나는 지금 말로써 업을 짓는데

말은 제 온몸으로 사원이 된다

 

 

 

승낙

 

오늘 그는 문턱을 넘었다

청춘이 끝나고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서른 살

그는 스승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급경사를 내려가는 것처럼

스승이 물었다

자네 집 가훈이 무엇이지?

언제 가훈이 있는 집이었나

얼른 시인의 말을 빌려 대답했다

깊은 생각 단순한 생활입니다 *

서른 번째의 낮과 밤을 떠올리는데

결혼할 여성은 어떤 사람이지? 또 물었다

문득 사람이 되라던 어머니가 생각나

미소를 한 600개나 가진 여성입니다

그는 전 생애로 대답했다, 고 생각했다

스승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주례를 승낙했다

 

스승의 주례사는 이러했다

후회를 견딜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해도 좋다

 

어느덧

눈 밑에 봄이 와 있었다

 

 

* 워즈워드의 말.

 

《문장웹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