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수영<꽃잎2>외 1편

미송 2012. 6. 8. 18:08

 

꽃잎 2 / 김수영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돌아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싫은 노란 꽃을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시평의 칭찬까지도 시집의 서문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정치 의견을 믿지 않는다

봄은 오고 쥐새끼들이 총알만한 구멍의 조직을 만들고
풀이, 이름도 없는 낯익은 풀들이, 풀새끼들이
허물어진 담밑에서 사과껍질보다도 얇은

시멘트가죽을 뚫고 일어나면 내 집과
나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들렸다 놓인다
요는 정치 의견이 맞지 않는 나라에는 못 산다

그러나 쥐구멍을 잠시 거짓말의 구멍이라고
바꾸어 생각해보자 내가 써준 시집의 서문을
믿지않는 사람의 얼굴의 사마귀나 여드름을―――

그사람도 거짓말의 총알의 까맣고 빨간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혼란을 승화시켜보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일본말보다도 빨리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된,
몇차례의 언어의 이민을 한 내가
우리말을 너무 잘해서 곤란하게 된 내가

지금 불란서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말하지
못한 한가지 말―――정치 의견의 우리말이
생각이 안 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것을 속였다
이 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봄이 오고
쥐가 나돌고 풀이 솟는다 소리없이 소리없이

나는 한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것을 속였다
이 죄의 여운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자유가 온다 해도

 

 

 

Buddha bar - Deja vu 

 

Buddha-Bar란 프랑스 파리 샹제리제에 Lounge 음악을 연주하는 곳.

 

 

'난해시'에 관해서는 김수영 자신도 결코 간단히 생각하지 않았고 여러가지 언급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는 문단에 모더니즘이라는 것이 들어온 이래로 너무나도 낯익어진, 까닭없이 어려운 시와 시론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어렵기는 해도 뜻이 담긴 '난해시'와 이해할 길이 없는 '불가해시'를 구별하기도 했으며,  "난해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난해시처럼 꾸며 쓰는 시가 나쁘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좀 시니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시단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진정한 난해시이다" 라고 난해시를 정면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사실 도저히 이해할 길 없는 불가해시나, 어려운 것 같아도 푸는 요령만 찾아내면 수수께끼처럼 간단히 풀리는 사이비 난해시가 결국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략

 

김수영의 참여시가 오늘날 비판받는 것이 그의 '60년대적' 또는 '모더니스트적' 한계 탓만은 아니다. 그는 오늘의 시가 '참여시'이기 전에 먼저 '현대시' 이기를 강조했고, '현대시' 이전에 '양심이 있는 시', '거짓말이 없는 시'를 요구했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도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실행이 미흡한 상식이다.

<백낙청>

 

김수영 시집 <사랑의 변주곡> (1988, 창비시선68, p 223~225)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