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표현 될 수 있는 것들이라면 왜 그리려 하겠습니까?"
"정신 상태에 따라서는 어떤 차단 스위치가
일련의 이미지와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주는 연결 스위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무의식적인 것 위에 의지가 덧붙여져 드러나는 순간에 의거해서만, 의도된 무언가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난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영국)은 1차대전때 영국 육군성에
1925년 가족과 독립한 그는 2년뒤 파리 폴 로젠버그 화랑에서 열린 피카소 개인전을 보았다.
선을 넘어가지 않고 그림 속 형상들이 와해되기 직전의 지점에서 인체를 왜곡시키는 방법에 접근해 있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인체의 독특하고 근본적인 생동감에 관심이 쏠려있던 베이컨은 피카소를 통해 직감적으로
그는 사람과 동물들의 연속사진, 예술 문학적 전통속의 비극적 성격의 신화, 사물 내면의 은밀한 폭력성, 원초적 절규,
의학서적 컬러 도판에 실린 처참한 질병과 흉칙한 상처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같은 화면에 동적인 순간과 정지된 순간을 복합시킨 특이한 회화를 창조해나갔다.
섬뜩하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독재자, 고깃덩어리, 친구의 얼굴, 자화상 등으로 표현되는 왜곡된 인체와 냉정하고 무심하게 에워싼 배경 공간은
생명체의 생생한 현장감을 극적으로 고조시킨다.
1953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세계적 화가로 이름을 얻게 된 베이컨은 1940~50년대 넘치던 추상미술의 바다에서
뛰어나고 힘있는 자기 목소리를 지닌 독특한 구상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예술 가운데 회화만이 ‘히스테리컬하게’ 자기 자신의 대재난을 통합한다.
화가는 직접 대재난을 통과하며 혼란을 껴안고 그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화가들의 그것이 서로 다른 이유는 이 혼란을 껴안는 방식과, 질서와 혼돈의 관계를 평가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현대 회화에는 세 개의 길이 있다.
기하학적 추상은 심연, 혹은 혼돈과 손의 존재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길이다.
그것은 일종의 금욕주의와 정신적인 구원을 제안한다. 그것은 형태적인 대비들에 따라
상징적인 코드를 만들어 낸다.
코드란 두뇌적이어서 감각이나 추락의 본질적인 현실이 결여되어 있다.
두 번째 길은 흔히 추상표현주의 또는 앵포르멜이라고 하는 심연 혹은 혼돈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 경우, 무한을 나타내는 것은 내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화폭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전면을 덮는 확장된 손의 힘이다.
이 방법은 낭만적으로 대재난의 광경을 그려 보여주는 대신 회화 그 자체를 가지고 미증유의 대재난을 만들어 낸다.
베이컨은 기하학적 추상의 시각적인 길도 아니고, 액션 페인팅의 손의 극대화도 아닌 제3의 길을 따른다.
지적·개념적·추상적 코드와 혼란을 동시에 피한다.
베이컨은 ‘단순히 감각적인 것’, 즉 격렬한 감각을 유발시킨 일차적 형상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격렬한 수단들은 고삐가 풀리지 말아야 하며 필수적인 대재난은 전체를 다 삼키지 말아야 한다.
돌발 흔적은 사실의 가능성이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형상은 돌발 흔적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하고 감각을 명확함과 엄밀함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베이컨이 바라는 회화는 언뜻 보기와는 달리 ‘내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미지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그가 여러 대담에서 항상 ‘감각의 범주들’, ‘감각의 층위들’, ‘감각의 영역들’ 또는 ‘움직이는 일련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방향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감각은 일시적이고 혼동스럽다.
감각은 지속적이지 못하고 명쾌하지도 않다.
하지만 뼈대는 더욱더 불충분하다. 뼈대는 추상적이다.
기하학을 구체적으로 혹은 느껴지는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감각에 지속과 명확함을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회화는 자신의 심층에 머무르며 독자적인 방법으로 순수한 논리의 문제를 발견한다.
순수한 논리란 사실의 가능성으로부터 사실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림은 회화적 사실이라고 부를 아주 특이한 어떤 사실을 현재로 만들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감각이란 쉬운 것, 이미 되어진 것, 상투적인 것의 반대일 뿐 아니라
‘피상적으로 감각적인 것’이나 자발적인 것과도 반대이다. 화가는 감각들의 원초적 통일성을 보여주고
복수(複數) 감각을 가진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베이컨이 자신을 두뇌적으로는 비관주의자이지만 신경적으로는 낙관주의자라고 선언할 때,
다시 말해 생명만을 믿는 낙관주의자라고 선언할 때 합리적이거나 두뇌적이 아닌
세잔이 말했던 ‘감각의 논리’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삶이 내가 그리는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지 않습니까?"
'시인과 작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Patrick Suskind) (0) | 2012.08.26 |
---|---|
옥따비오 빠스 (0) | 2012.07.20 |
김선우 (0) | 2012.05.15 |
장석남 (0) | 2012.04.26 |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0) | 2012.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