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본 사람은 알지
1.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다. 여자가 빼닥구두를 신고 삐뚤빼뚤 걸어가듯 이쪽 건물로 올라갔다가 엉덩이를 또 힘껏 추켜세우고 내려와서는 얼른 저쪽 건물로 움찔움찔 올라간다. 정말로 비상이다. 세상인심이 아무리 야박해도 그렇지, 건물마다 붙어있는 화장실 문을 꼭꼭 잠을통으로 채우고 이렇게 비상 걸린 채 방황하는 사람을 외면해 버리다니,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잠기지 않은 화장실을 찾아 헤맨다. 화장실에 대한 불만이 점점 사회전체로 번져간다. 어찌 세상이 이럴까, 이러다가는 화장실과 전혀 상관없는 대통령까지도 욕하겠다.
급한데 할 수 없다. 삼십 분 전에 점심식사를 했지만 식당화장실이라도 이용하려면 또 먹어야 한다. 쯧, 빼기도 바쁜데 또 쳐 넣다니...... 후다닥 뛰어든 식당에서 다짜고짜로 김치찌개를 시키고는 곧바로, “화장실이 어디죠?”
주인은 카운터를 턱으로 가리키며 벽에 걸린 화장실 열쇠를 가지고 이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참 성의 없이 장사한다. 얼른 달려가서 열쇠를 가져와도 시원찮은데 턱으로 쓱 밀다니.
잉, 급하다. 급해,
엉덩이를 이리 실룩 저리 실룩대며 계단을 오르는데 정말로 머리꼭지까지 다 뒤틀릴 지경이다. 열쇠구멍도 제대로 못 찾겠다. 힘을 꽉 주고 서 있는 다리가랑이가 덜덜 떨린다. 혁대를 푸는 순간과 엉덩이를 까는 순간, 그리고 펄썩 주저앉자마자 와르르 물건이 쏟아지는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다.
비로소 심오했던 그 뜻을 알겠더라, 절에 가면 왜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하는지, 근심은 역시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터지려는 성문을 양쪽 엉덩짝으로 끙끙 틀어막고 꽉꽉 잠긴 화장실 앞에서 절망해봐야 그 근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도시의 건물에 붙어있는 화장실은 엉덩이를 걸치는 양변기와 재래식 화장실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 보는 변기가 있는데, 내가 들어선 화장실은 재래식처럼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보게 되어 있었다.
어휴, 살았다.
눈꺼풀을 스르르 감아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을 다 본 후에 일어서며 머리위에 달린 꼭지를 잡아당겨 물을 변기 속으로 쏟아내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아울러 아랫배도 경쾌했다. 주섬주섬 옷을 올려 입고 나오려다가 나는 멈칫했다.
잉?
변기 속에는 애를 먹이던 물건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점잖은 자세로 떡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버려두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발로 슬쩍 밀자니 구두코에 묻을 것은 뻔하다. 머리위에 매달린 통에서는 쉭쉭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이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물이 다 차면 고리를 힘껏 당겨서 청소를 다시 한번 해야겠다.
잠시 후에 물이 차오른 것을 확인하고는 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물이 쏴 하는 소리를 내며 관을 타고 내려와서는 변기 속으로 밀려들었다.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물건을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물건이 쏟아지는 물세례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얼래? 내 몸속에서 나온 물건이지만 버티고 있는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의자왕이시여, 권좌에서 내려오시옵소소, 한 가지 근심을 해소하니 별 것이 다 근심으로 차오른다. 다시 머리 위에 매달린 물통을 바라보았다. 좁은 화장실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채 물통에 물이 차오르기를 다시 또 기다렸다. 한참 있다가 다 차오른 물통의 고리를 쥐고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잡아당겼다. 이번에는 폭포 같은 물 속에서 물건이 약간 옆으로 회전하는 듯 하더니 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뭔 저런 괴물딱지가 다 있지?
실로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냥 내버려두고 나올까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침 누가 밖에서 화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물통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제발 단칼에 저 물건을 싹 쓸어가 주십시오.
2.
강촌역이다.
북한강을 굽어보며 강촌역 부근을 또박또박 걸었다. 묘령의 여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몸매도 기똥차니 실실 군침이 돈다. 서로가 소설을 주거니 받거니 쓰듯 말을 맞춰가며 탐색전을 벌인다.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져 바람타고 사방에 날린다. 파란 하늘은 드높기만 하다.
나는 먼 하늘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참으로 점잖은 자리인데 손이 자꾸 아랫배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아침에 먹은 순대해장국이 영 시원찮다. 뱃속이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살살 아파오는 것이다. 옆에서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경이 온통 아랫배 쪽으로 쏠려가고 시선은 사방을 훑으며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적한 시골에 건물이 줄줄이 늘어선 것도 아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화장실은 바로 강촌역사 옆에 붙어있는 공중화장실이었다. 지금은 새로 역사를 지어서 화장실을 없앴지만, 20여 년 전, 그 당시에는 역사 옆의 우뚝 선 언덕 위에 화장실이 있었다. 깃발처럼 날리는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눈어림으로 재어보았다.
약 백 오십 미터 정도는 될까,
“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습니다. 미안해요. 여기 나무 아래서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적당한 기회에 양해를 구하고 요동치는 근심을 달래며 역사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물론 뒤에서는 여자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여 점수 깎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막 뛰어가도 시원찮은 판인데 그럴 수도 없다. 될 수 있으면 점잖게 걸어가야 한다.
어휴, 정말 힘들다.
척척 걸어가는 다리에는 힘이 꽉 주어져 있다. 엉덩이도 위로 솟구친다. 007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본드는 걷는 뒷모습이 매력적이라는데, 또박또박...... 행여 뭐가 마려워서 걷는 폼이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드디어 목표물에 도착했다. 몸을 싹 돌려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여자화장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데 괜찮겠지. 화장실 입구를 이쪽저쪽으로 들락거리다가 여자의 눈에 띄면 오히려 점수 깎인다. 더구나 지금은 긴급조치가 절실한 비상사태가 아닌가, 후다닥 아무 문짝이나 열고 뛰어 들어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도 속이 시원했다. 때마침 역에 들어오는 열차의 굉음도 쾌청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턱을 괴고 앉아서 편안하게 근심을 쓸어내리고 있자니 이것도 인생이 가져다주는 낙중의 하나라고 봐야겠다.
얼래? 이게 뭐야?
별안간 밖이 왁자지껄 소란해지더니 여자들이 화장실 안으로 와르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아차, 방금 쾌청한 소리를 내며 들어온 열차에서 내린 여자승객들이 볼일을 보려고 무더기로 몰려든 것이다. 얼른 두 손으로 문고리를 꽉 잡아 매달려 당황하고 있자니, 하나의 근심이 쓸고 지나자마자 또 하나의 근심이 찾아온 것이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나도 열심히 맞대응하며 두드렸다. 그러나 내가 앉아있는 화장실 앞에 쭉 줄을 선 여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친다.
“빨리 나와요. 급해요 급해.”
진땀이 흘렀다. 문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문고리를 죽어라 잡고 늘어진 손가락도 아파왔다. 공중으로 쑥 사라질 수 없을까, 하필이면 이 때에 기차가 들어올게 뭐람, 도저히 더 이상 이 고지를 사수하지 못하겠다. 안절부절 일어서서 옷을 잘 추스르고는 호흡을 몇 번이나 가다듬었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오직 철판 깔린 얼굴뿐이다.
휴-
한 손으로 넥타이를 바로 잡고는 드디어 밖으로 한 발을 쑥 내디딘 순간,
바글바글 모여서 소란을 떨던 여자들이 일제히 입을 꾹 다물더니 조용해진 것이다. 적막이 짜르르 흘렀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유세장에 모인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 같다. 커다란 키에 어깨를 으쓱 하고는 제자리에 잘 잡혀있기만 한 죄 없는 넥타이를 자꾸 만지작거리며 몸을 내밀었다. 저 반짝이는 눈동자들, 대낮에도 별이 사방에 깔리는 줄 처음 느꼈다.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모세의 지팡이 아래 사해가 쫙 갈라지듯 여자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닌가,
뚜벅뚜벅...... 양쪽에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느낌이다.
거의 내 정신이 아닌 채 꼿꼿하게 그 길을 걸었다. 약 십년은 걸렸을까, 아니면 이 삼십년 정도의 긴 세월이었을 것이다. 무척 오랫동안 갈라진 사해를 건넌 모양이다. 여자들 틈을 다 빠져 나오자마자 뒤에서 와 하는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함성처럼 터졌다. 그래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007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본드처럼 걸었다.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 내려와 그 여자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혹시 내가 당한 일을 다 보고 있었을까?
그 여자는 산 아래를 물들인 단풍에 넋을 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휴, 다행이다. 그나마,
2006. 10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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