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윤의섭<바람의 뼈>

미송 2012. 11. 15. 07:40

    바람 / 윤의섭

     

    바람결 한가운데서 적요의 염기서열은 재배치된다

    어떤 뼈가 박혀 있길래

    저리 미친 피리인가

    들꽃의 음은 천 갈래로 비산한다

    돌의 비명은 꼬리뼈쯤에서 새어 나온다

    현수막을 찢으면서는 처음 듣는 母語를 내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음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후에는 공중에 뼈를 묻을지라도

    후미진 골목에 입을 댄 채 쓰러지더라도

    저 각골의 역사에 인간의 사랑이 속해 있다

    그러니까 모든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가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열은 생각처럼 슬픈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풍경은 바람의 뼈를 분다

    來世에는 언젠가 잠잠해 지겠지만

    한없이 스산하여 망연하여 그리움이라든지 애달픔이라든지

    그런 음계에 이르면 오히려 내 뼈가 깎이고 말겠지만

    한 사람의 귓볼을 스쳐오는 소리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주는 바람 소리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말을 웅얼거리며 가로놓인 뼈의 소리

    저것은 가장 아픈 악기다

    온 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떠나가거나 속이 텅 비어야 가득해지는

     

    계간 『문학과 의식 2012년 여름호

     

    시집『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지성사, 2005) , 『마계』(민음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