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1007~72)가 지은 〈육일시화 六一詩話〉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에는 시화 이전에도 시에 관한 전문적인 비평이론서가 있었으나, 구양수는 시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구축하기보다 '한담'(閑談)에 가까운 단편적인 논의, 비평, 해설을 곁들인 시인과 저작에 관한 일화 등 잡기체의 비평적 수필을 실었다. 구양수의 부드러운 저술의식과 자유로운 서술양식이 크게 인기를 얻어 이와 비슷한 형태의 시화가 널리 기록되었다. 그뒤 시화는 하나의 장르로 굳어져 시 비평의 새로운 형태로 근대 초기까지 계속되었다.
시화는 내용에 따라 첫째, 시의 본질이나 속성·양상 등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째, 시의 창작방법을 제시하거나 수사기법 등을 처방해주는 작시론(作詩論), 셋째, 시 작품이나 시인의 작풍을 해설하거나 평가하는 시평(詩評), 넷째, 역대 시인들의 특이한 행적이나 시 창작의 배경이 되는 일화를 서술하는 시일화 등으로 나눈다. 시화는 상호연관적이며 시화를 지은 옛사람들의 비평의식 또한 분석적·체계적으로 진술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시화의 문맥은 여러 범주가 맞물리고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 진술 내용을 볼 때 시론이나 작시론보다는 시평이나 시일화의 범주에 드는 시화가 훨씬 많다. 가장 많은 것은 시평에 시일화를 곁들이는 것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또는 시작품을 창작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인품과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한 고전적 비평의식에 따른 것이다. 시평은 체계적 이론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평론가의 직관·인상에 따르는 '감상비평'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시어나 시구의 단편적 분석·평가에 머물거나 특정 작품이나 작가의 시풍·품격을 관용적인 '평어'(評語)를 통해 간단하게 평하는 정도에 그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시화는 고려 후기에 송나라 시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발전했다. 그러나 중국의 한시보다는 우리나라의 시와 시인에 대한 주체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각 시기마다 시화는 당시 문학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새롭게 발전되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화집은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이다. 이인로는 문학의 영원성과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하고, 시를 쓸 때 '용사'(用事:고사나 명구를 인용하는 수사법)를 위주로 하는 기교적 문학관을 내세웠다. 따라서〈파한집〉은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 아래에서 위기에 처한 귀족적 문인의 자의식과 퇴영적 문학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에 반해 당시 적극적으로 현실에 임했던 이규보(李圭報:1168~1241)는 〈백운소설 白雲小說〉 등에서 시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강조했으며, 시의 원리에 대해 보다 심화된 신의론(新意論)을 주장해 이인로의 귀족적 기교주의 문학관을 비판했다. 최자(崔滋:1188~1260)는 이규보의 뒤를 이어 〈보한집 〉을 펴내면서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완한다고 했다. 〈보한집〉은 문학이론·문학사·품격론을 두루 갖춘 책으로, 고려의 시화문학을 비평문학의 위치로 정립시켰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비평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시화문학은 조선시대에 더욱 발전했다. 조선 초기의 문인 관료를 대표하는 서거정(徐居正:1420~88)의 〈동인시화 東人詩話〉는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시화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순수한 시화집이다. 중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한시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작법에 있어서는 중국의 전범(典範)을 익힐 것을 주장하는 용사론에 치우쳐 귀족적 한계를 보여준다. 잡록이 중심이 되었던 당시 시화문학으로는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傭齋叢話〉,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 秋江冷話〉 등이 유명하다. 사림파가 득세하고 사대부의 한시문학이 절정에 이른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 사이에는 시화문학도 성숙하여 허균(許筠:1569~1618)의 <학산초담 鶴山樵談〉 같은 책들이 나왔다. 이 책들은 역대 및 당대 시인들을 비평한 것으로 뒷날 비평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밖에 17세기 후반 남용익(南龍翼:1628~92)의 〈호곡시화 壺谷詩話〉는 역대 시인의 시를 정리한 것이며, 김만중(金萬重:1637~92)의 〈서포만필 西浦漫筆〉은 민요나 가사 등 국문시가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후기에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역대의 시화·잡록을 정리해 펴낸 〈시화총림 詩話叢林〉 이후로 시화문학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명맥만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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