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작가들

김선우

미송 2013. 8. 18. 09:30

살바도르 달리 作 '폭발하는 순간 녹는 시계'

 

 

김선우 시인생명과 여성성에서 강력한 희망을 본다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우정과 연대의 관계로 맺어지는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발현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잘 발현된 리더십이 더 많은 연대와 우정으로 확산됐으면 합니다.”

 

환경생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소외받는 이웃들을 대변하면서 소신 있는 사회적 발언을 해온 김선우(44) 시인다운 답변이다. ‘2013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리더라는 말은 쑥스럽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리더일 것”이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김선우 시인은 한진중공업, 제주 강정마을, 4대강 사업 등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해온 작가다. 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주의)의 시학을 펼쳐온 그는 1996년 등단해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한 사람의 작가는 한 사람의 시민이기도 하다. 자신이 포함된 당대 사회 구성체의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의 수준에 대한 관심은 저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소설 ‘캔들 플라워’를 쓰게 했던 2008년의 촛불시위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라는 시를 쓰게 했던 2011년의 희망버스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둘 모두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고리에 대한 성찰과 동시에 가장 희망적인 미래 가능성 역시 엿보았다”고 했다.

 

최근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회이슈는 “탐욕스러운 반인권적 자본”과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차, 현대차를 비롯해 유성기업, 천일교통 노동자들이 송전탑, 조명탑, 굴다리 난간 등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며 “지상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하늘 사람’들이 돼야 하는 이런 고공 농성의 현장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최근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고공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 조세희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의 명작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소리연대’)을 통해 선보여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동료 문인들과 함께 제주 강정마을 전체를 평화의 책 마을인 ‘평화도서관’으로 만드는 사업도 진행한다. 이미 350명의 작가들이 이 일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강정마을 주민들, 평화지킴이들, 작가들, 시민들과 함께 3월 초에 ‘강정평화책마을’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킬 계획이라는 점도 전했다.

 

1996년 등단한 이래 여성주의 시를 꾸준히 선보여온 김 시인은 가장 최근의 소설 ‘물의 연인들’에서도 여성폭력과 가정폭력의 문제를 다뤘다. 6녀1남의 전형적인 가부장 집안에서 태어나 아들을 낳기 위해 딸 여섯을 낳은 엄마를 보며 자라는 동안 자연적으로 ‘여성의 삶’에 대해 눈뜨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 가계의 상처에 눈뜨게 해주었고, 상처에 눈뜸으로써 치유의 방법을 일찍부터 고민할 수 있었다. 이런 가정환경은 역설적으로 축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물의 연인들’은 남성보다는 여성 독자들이 강력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명의 감각에 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이 여성 독자들이기도 하고, 폭력의 고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여성 독자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 여성성, 이것은 가장 강력한 우리의 미래 비전인데, 가장 강력한 미래 비전을 간직한 존재들이 가장 강력하게 반응해 와서 기뻤다”고 말했다.

 

어느덧 불혹을 훌쩍 넘긴 그에게 “여자의 40대는 어떤가”도 물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쩜 이렇게 예쁘지?’ 하는 마음이 40대가 되면서 생긴 감정입니다. 사람들 저마다가 각기 다르게 가진 특질들, 아름다움들이 잘 보여요.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무슨 얼짱, 몸짱, 신체 비율 어쩌고 해가며 획일적이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미의 기준에 따라가려고 허둥대는 20·30대 여성들을 보면 안타깝죠. 얼마나 ‘고유하게’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주고 싶어져요. 친구하고 싶어지는 거죠.”

는 인터뷰 말미에서 “행복을 미래에 저당잡히지 말 것. 오늘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미래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오늘이 곧 미래”라며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다웠다.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물의 연인들’

 

 

2013 여성신문의 약속 - 여성이 힘이다

 

'숟가락'은 젓가락과 달리 물을 뜰 수 있다. 두 손 오므려서 조심스레 물을 덜어내듯이 숟가락으로는 정성을 다해 물과 밥과 죽을 뜰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먹거리가 삶의 일부를 차지했던 때부터 숟가락은 존재해왔다. 수많은 이들의 입술을 적시면서 그들에게 생명의 유기체를 전달해왔다.

그리고 숟가락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의 입에 밥 한숟갈 떠넣어주는 것으로부터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해 오셨다.

 

'쓰레기통'은 낙관주의자다. 냉철한 현실주의자며 지극한 쾌락주의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라는 버려지는 것들을 주워모으는 이율배반적인 삶에도 의연하다. 나는 한 때 `음식물 쓰레기`라는 합성어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량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인정머리 하나 없는 세태가 음식물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시계'는 잘라놓은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시킨다. 그 속에 세월과 연륜이 담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 12개가 가득 차 있는 시계보다

그 숫자들이 모두 날아가버린 뒤의 텅 빈 시계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사람들과 약속 시간을 정할 때 "정각 2시에 보자"라는 말보다 "사과꽃이 필 때"

혹은 "첫눈이 내릴 때" 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혹은 그럴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남자가 주변 사람 아랑곳없이 '휴대폰'으로 일상의 불만을 여과없이 털어내도, 영화관 앞 좌석에 앉은 여자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이상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철 속 모든 이들이 휴대폰으로 소통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오락을 하고 내가 모르는 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그 순간 사람들이 휴대폰과 더불어 전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나 또한 그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되는 것을 느낀다. '휴대폰'을 말랑말랑한 촉감의 사물로 변신시킨 뒤 진한 커피에 적신 뒤

으깨 먹는 상상을 하며 혼자서 키득키득 웃어본다.

 

- 김선우의 사물(事物)들(2005, 눌와) 中.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2011년을 기억함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 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 수 있나요?

옥수수밭을 지나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지 너무나 오래 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동안

수 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 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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