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 이야기 / 오정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집 안팎에 여러 동물들을 키웠다. 노랑과 연둣빛깔이 어우러져 곱기도 한 앵무새도 한 쌍 키워 보았고, 기억에 잘 떠오르지 않지만 쥐처럼 생긴 털 복숭이 동물도 키워 보았다. 진돗개를 키우다가 암컷이 폐렴으로 죽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겨울에 목욕을 시킨 주인의 잘못이었다) 아이들과 울며 십자가 무덤을 만든 적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가금류들을 끊임없이 키우셨다. 닭, 오리, 심지어 산에 덫을 놓아서 잡아 온 산토끼까지. 나의 방과 후 일과 중 하나였던 토끼풀 뜯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곤 한다. 토끼들처럼 오물오물 많이도 먹던 짐승은 드물었다.
아버지의 가축 사랑의 종결은 시식하는 일로 마무리 되었다. 닭도 오리도 토끼도 개도 어느 정도의 시일이 지나면 사라지곤 했다. 특히 복날이면 마당 한 곁에 묶어 놓았던 쫑이나 누렁이나 독그는 아버지의 뱃속으로 차례대로 녹아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언제나 혀를 차며 ‘잔인한 인간’ 하고 내뱉었다. 불가에서는 지렁이나 개미 한 마리도 사사로이 밟지 않는다는데, 어째서 나의 아버지는 그랬을까.
종교성이나 각자의 취향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아직 그 부분이 의문이다. 그래서 어젯밤에는 문득 항의조의 질문을 뱉어냈다. “어떻게 자기와 동거동락하던 개를 자기 손으로 (혹은, 남의 손으로) 잡아서 끓여 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지만 그건 너무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한 두 사람이 먹는 것도 아닌데 뭐… 그가 간단없이 대답했다. 하기야 초복에서 말복까지 보신탕 그릇을 놓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어린 나의 질문에 집에서 내 손으로 키우던 짐승들은 원래 주인 손에 죽어서 주인의 몸으로 들어가는 걸 행복으로 여긴다 말씀하셨었다. 어렸을 적엔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믿었지만 지금에 나는 그 말씀이 웃기는 말씀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만물의 영장을 자청하는 소위 인간 중심의 인간의 말일 뿐이란 것을.
이젠 아이들도 내 곁을 떠나 각자의 위치에서 살고 있다. 길게 카톡을 나누고 싶어도 저들은 항상 바쁘단 핑계를 댄다. 공부하는 중이고 돈 벌러 나가는 중이고, 그래서 너희들 참 대견하다, 칭찬을 하면서도 가슴 한쪽엔 휑한 바람이 분다. 그래 너희는 너희고 나는 나지. 슬하에 줄을 끊고 훨훨 세상으로 날아간 너희는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살고 있으니, 이런 과제야 누구나의 것임을 진작에 알았음이다.
소원하던 바대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나지막한 단독주택으로 옮겨 오면서 개 두 마리를 데려다 놓았다. 하나는 풍물시장에서 하나는 유기견 센터에서. 하나는 외로울까 봐 하나를 더 데려왔다. 광복절에 데려온 작은 녀석은 꼬박 두 달이 걸려서야 주인과 멜롱이에게 적응이 되었다. 어젯밤엔 여느 날처럼 따로 자고 있는가 해서 문을 열어 보았더니 멜롱이 집에 쏙 들어가 자고 있었다. 추워지니까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까칠한 깜찍이가. 언제부턴가, 아이들 얘기 대신 멜롱이와 깜찍이가 노는 얘기로 일상은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늙어가는 가 봐 …….
쪼그만 깜찍이가 몇 차례 병치레를 하면서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게 들어갔다. 순서대로 털갈이를 하는 통에 마당과 화단 구석구석은 털들의 잔치다. 아예 마당을 자기네 안방처럼 전세냈다고 봐야 옳을 정도다. 가끔은 안 하던 짓을 하느라 보도블록 사이에 구멍을 파댕기기도 하고 화단에 무덤을 파기도 한다. 새벽 두 시에 뜬금없이(뭘 봤기에) 짖어서 단잠을 설치게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또 다른 예쁜 짓은 얼마나 많은지, 나열하자면 삼 박 사일 아니 두고두고 살며 이야기해야 할 정도이다. 그들을 왜 반려동물이라 칭하는지 우리는 손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경험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깔끔하게 살고 싶단 생각에 저것들을 그냥 확 치워 버릴까, 하다가도 얼른 입을 다문다. 그러기엔 너무나 친근해진 존재들. 저녁 무렵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늦어지면 불빛도 없는 어두컴컴한 마당에서 오래 불안해하는 저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기다림의 소통과 환희를 배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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