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방과후 놀이

미송 2013. 11. 1. 23:02

 

 

 

 

 

방과후 놀이

 

 

 

요즘 우리 1학년 아이들은 팽이놀이에 한창입니다. 천 원짜리에서 만 원짜리까지 팽이를 쥐지 않은 아이가 없어요딱지를 건네주며 딱지 치기를 하자던 우창이도 일주일전부터는 팽이를 가져와 조립을 합니다. 시시탐탐 책상 밑에서 손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때론 얄궂게 보입니다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이라서 어른의 눈길도 바지런히 따라갑니다조용하다 싶을 때 저는 습관처럼 책을 펴도록 시킵니다. “얘들아 어제 책버스 선생님이 그림책을 주고 가셨네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책버스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입니다. 근무 이후 자원봉사를 하러 나오신 간호사 언니들의 옆모습이 찐빵처럼 따스합니다.

 

바닷속 물고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물고기 그리기를 또한 좋아합니다. 네 명의 아이들이 다 그려보고 싶어 하는 물고기는 바로 톱상어입니다. 서로 다르게 그리는 모양이고 크기이지만 이름은 똑같은 톱상어입니다. 백지와 연필만 있으면 화가가 된 냥 스삭스삭 스케치를 하는 아이들, 그림을 그리면서도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덩치 큰 물고기를 좋아합니다새 그림책을 펼치다 은빛 멸치 떼를 보았습니다등에 달라붙은 눈부신 비늘이 파란 바다를 수놓고 있는 그림이었지요. 그때 문득, 

 

삼천년 묵은 멸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얘들아- 멸치가 삼천년이나 살면 몸집이 얼만해 질까” 물었지요. 갸우뚱하던 성훈이가 고등어 만해 질 거라 대답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해 주던 맛있는 고등어조림이 생각난 듯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대치하기 쉬운 것에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 같습니다. 자기의 아픔을 휴지통에 가지런히 처리하지 못하고 만만한 옆 사람에게 투사하는 버릇도 그런 본능 중 하나일까요. 하여간 어린 아이일수록 자기 생각을 에둘러 그리길 좋아합니다.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 다르게 흘러나옵니다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싱겁지만 재밌습니다.

 

지금도 자꾸 웃게 되는 이야기, 삼천년 묶은 멸치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데요. 이야기의 배경은 바다, 제가 좋아하고 가끔은 무서워하기도 하는 동쪽 바다입니다. 성난 파도가 방파제를 후려칠 때면 열라 무서워 치달리고 싶기도 하지요. 쫓아오지도 않을 남자를 약 올리며 대문 앞까지 억지로 유인하던 어린 계집애가 바다와의 게임 속에 다시 알짱댑니다. 옛날 동쪽 바다 밑에는 명태와 오징어 가재미가 많이 살았다지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건져 먹어서 일까요. 배도 안고픈 사람들이 냉장고에 너무 많이 쌓아둔 때문일까요.

 

삼천년 묵은 멸치대왕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한 번은 자기가 하늘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땅으로 뚝 떨어지고, 열 명의 사람이 나타나 자기를 메고 어디론가 가는 꿈이었습니다. 흰 눈이 내리고 추운가 했더니 이내 더워지고, 그러더니 붉은 고개를 꼴까닥 넘어가더라는 것이지요. 꿈 해석이 궁금해진 멸치대왕이 가재미를 불러 서해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꿈 해몽가 망둥이를 모셔오라는 명령이었지요. 열흘 밤낮을 헤엄쳐 간 가재미가 망둥이를 모셔왔을 때 그 곳에서는 이미 꼴뚜기와 메기 병어까지 불러들인 멸치대왕이 잔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것들이, 가재미는 배알이 뒤틀렸어요. 그나저나 망둥이의 꿈 해몽이 진국입니다.

 

멸치대왕님의 꿈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오니 잠시 땅에 떨어진 것은 물을 뜨러 내려온 것이요, 열 사람이 메고 가는 것은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나는 것이며, 흰 눈이 내리는 것은 용이 날씨까지 이리저리 조절하는 것이고, 붉은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노을이 질 때 승천한다는 뜻입니다. 망둥이의 꿈 해몽이 끝나자 멸치대왕과 다른 물고기들은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를 보던 가재미의 심기가 더 뒤틀렸습니다. 아니 그런 엉터리 해몽이 어디 있어, 성질이 벌컥 났습니다. 동상이몽은 불행이지만 뒤꼍으로는 해학을 구전시키는가 봅니다. 중력이 작용되는 곳에서의 우수와 해학이 바닷속에도 공존하는가 봅니다.

 

가재미의 해몽은 이랬습니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낚싯대에 걸렸다는 것이요, 어부들의 손에 의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멸치대왕이 석쇠에 올려진다는 것이니, 흰 눈은 소금이요 붉은 고개는 사람들의 목구멍이 아니겠습니까. 해몽이 미처 끝나기도 전 번쩍 가재미의 뺨에 번개가 쳤습니다. 화가 난 멸치가 가재미의 뺨을 얼마나 세게 후려쳤던지 눈알이 획 돌아가 버렸지요. 이 때 가재미가 벌러덩 자빠지면서 메기를 짓밟아 버렸어요. 입이 귀 뒤까지 찢어진 메기를 옆에서 지켜보던 꼴뚜기가 놀라 그만 제 눈알을 뽑아 꽁무니에 감추었답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병어는 그 와중에 자기 입을 꼭 잡고 웃느라 입이 뾰족해지고 말았다지요.

 

아이들이 물고기 그림을 다 그렸습니다. 어쩌면 같은 물고기라도 저렇게 다르게 그릴까이래저래 틀린 것이라고 지적할 게 없구나. 조금 다를 뿐, 잘못 그렸다거나 틀리게 그렸다 말 할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의 그림을 접수하면서 문득 제 안에 말아놓았던 부자유한 기억들을 돌리기 시작했지요. 펼침도 오므림도 일제히 원을 그리며 곡선을 연주합니다. 작가미상의 이야기 속에는 별 볼일 없는 것들의 우스운 전설이 담겨 있었어요. 바닷속 모자란 것들 이야기라 말하면 딱 어울릴 것 같았지요. 그러나 오랫동안 웃음을 전파한 이 이야기가 한 범부의 상상력에서 나왔음이 참 경이롭습니다욕심이 없어 더 해학적인 전설입니다.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원모양을 그리는 팽이놀이나 제 몸을 뒤집는 딱지놀이나, 아이들의 놀이가 모두 신성해 보입니다모든 건  한 끝 차이, 막판 뒤집기라는 듯, 딱지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저의 팔뚝이 점점 더 굵어만 갑니다.

    

2008년 가을,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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