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최승자,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미송 2013. 11. 26. 08:03

 

 

사진 by_ ssun

 

 

 

최승자,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 심장 속 새집의 열쇠를 빌려드릴게요.

내 몸을 맑은 시냇물 줄기로 휘감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몸 속을 작은 조약돌로 굴러다닐게요.
 
내 텃밭에 심을 푸른 씨앗이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창가로 기어올라 빨간 깨꽃으로
까꿍! 피어날게요.
 
엄하지만 다정한 내 아빠가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너그럽고 순한 당신의 엄마가 되어드릴게요.
 
오늘 밤 내게 단 한 번의 깊은 입맞춤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예쁜 아이를 낳아드릴게요.
 
그리고 어느 저녁 늦은 햇빛에 실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저무는 산 그림자보다 기인 눈빛으로
잠시만 나를 바래다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뭇별들 사이에 그윽한 눈동자로 누워
밤마다 당신을 지켜봐드릴게요
 
 최승자 -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났으며, 계간 문학과 지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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