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미송 2013. 11. 30. 10:19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 오정자

 

 

누군가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어서, 먹자니 입천장을 다칠 거 같고 안 먹자니 은근 먹고 싶기도 한 그런 사람이라면 불편하겠다. 오히려 뜨거운 커피가 낫겠다. 밥 보다 먼저 대하는 커피는 뜨거울수록 좋아 오래된 위안의 벗이자 도구다. 식어가는 커피잔의 여운을 만지며 불면의 밤조차 깨끗이 정돈해주는 아침이란 단어를 바라본다. 숙원하는 눈길로 마당을 쓸고 강아지들의 분신인 털과 똥을 치우면서, 또 내년 봄 텃밭에서 자라날 식물들을 상상한다. 미리 그리 하는 것은 바야흐로 지금이 겨울인 까닭.

 

점괘를 열듯 글 조각을 찾다 보면 늘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은 오래 전의 나였거나 아직도 내 안에 쉼 쉬는 너이거나, 동일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침과 더불어 언제나 슬픔의 밤을 치유해 준다.

 

권정생님의 시 한편에 꽂혔다. 어떤 경로로 왔는지 몰라도 그것은 필시 와야 할 곳으로 왔다는 듯 방긋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 권정생

     

도모코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 학년인 도모꼬가

일 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 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코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코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코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그 사람의 글을 읽고 나서 글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고, 그 사람은 과연 누굴까 욕심내어 찾아보는 경우가 있다. 권정생님은 내가 네 살적에 강아지똥 동화를 썼다. 그 강아지 똥을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려고 처음으로 읽었다. 격세지감이다.

 

찾던 사람의 짧은 시나 동화를 다시 읽고, 나아가 그가 만약 장편을 썼다면 그것까지 송두리째 읽어 줄 의욕을 품는다. 작은 미소로 시작되어 동화를 꿈꾸게 되고 꿈처럼 우리를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래서 남겨진 자가 예우를 갖춰야지 하는 다짐의 과정이란 선량한 삶을 전제하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의 삶의 흔적을 들여다보며 그의 유언을 읽는 아침이다.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 권정생

 

    

1980년 이후 다섯 평 작은 흙집에서 옷 한 벌과 고무신 한 켤레로 살며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던 작가 권정생은 2007년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그가 살던 마을 사람들은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불쌍하게 살다간 외로운 노인인 줄만 알았는데 한 달 수 천 만원이 넘는 인세를 받는 유명 작가이자 인세로 모은 10억 원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적어놓은 유언장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기도해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331일 오후 610분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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