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아무렇게나

미송 2013. 12. 21. 09:08

 

 

 

무렇게나 / 오정자

 

그다지 타이트하진 않지만 주 5일 간의 내 삶은 제법 규칙적이다. 10분 이내의 거리이지만 시간을 재어 버스를 타야하고 또 귀가할 땐 바깥의 기온을 살펴 걸을 것인가 자가용을 기다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은 체온을 보호해 주는 공간 안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가난한 얼굴들을 만나고 혼자 눈을 감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천과 가위를 매만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만약 우리에게 쉼표와 같은 순간이나 날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육자의 손에 이끌리는 짐승이나 가금류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두 말 하면 잔소리같은 일상을 보고하고 나열하는 것도 규칙의 굴레에 속한 것일지 모르나, 나는 그저 타이핑하는 게 좋아, 눈을 떴을 때 가만 앉아 있기가 심심해, 귓전에 들려오는 물소리와 겨울새의 목소리가 고마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인데. 무언가. 시방 무언가라고 썼나. 말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소재도 없이 어떻게 이야기를 엮어 눈 속에 들어오게 할 것이며, 연장도 없이 어떻게 재료를 형상화해 보여줄 수 있나. 분명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언어에 대한 나의 애착은 이렇다 할 변명을 아직까지 못 만들고 있다.

 

나는 무엇을 쓰고 싶어 말의 서두인지 꼬리인지를 돌리고 있는 중인가. 분명 무슨 단어 혹은 무슨 말 무슨 이야기가 있어서 앉았을 텐데. 그것이란 그 을 어떻게 끄집어내어 시작하고 맺어야할지 서성대는 꼴이다. 이것은 언어의 한계가 아니라 지식의 한계이거나 표현의 한계다. 아니 한계라는 단어를 굳이 쓸 필요는 없었다. 툭 튀어나왔다는 게 고작 한계라는 단어이니 스스로를 옥죄이려는 무의식이다.

 

어제 아침에는 무슨 찌개를 먹었더라. 천천히 시간의 맥을 짚으며 나를 정돈하듯 어제를 떠올리기 시작하자! 그러면 어제 먹었던 찌개나 국이 생각날 것이다! 꽁치튀김은 기름기가 많았고 오징어 된장국은 구수하고 달콤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있다. 아무렇게나 해 줘도 당신이 한 건 다 맛있어! 하던 말. 그래, 어쩌면 심하게 내숭을 떨 듯 그 말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렇게나.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좋은 말인 것 같아서,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해도 네가 좋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 말이 구원과 자유의 속삭임처럼 들려서.

언어의 신비한 힘과 치유의 능력을 믿어야 겠다. 일상처럼 시장끼가 동하는 아침이다. 요리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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