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기부금 / 오정자
한 시간 정도만 두들겨 보자, 하고 앉았다. 작정을 해야 되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문학은 과제물처럼 중요시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도무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드렁하기까지 하니 어찌된 일일까. 이러다 변심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도 든다.
의지적으로 나는 조용한 시간을 만든다. 노을이 진 이후 커피 맛을 음미하듯 사람 사이의 향기나 또는, 지나치게 흥분했던 또 다른 나를 정리한다. 습관일지도 모른다, 기록하고 있을 때에 드는 유스트레스라 할까, 아무튼.
요즘은 일기예보가 예전보다 정확히 잘 맞는다. 신기해서 내가 김밥을 먹으며 말했을 때 ××씨는 기상청 안에 비싸고 좋은 기계를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라고, 기계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였구나 생각한다. 겨울은 확실히 춥다. 이웃들은 情이 더 그립다.
그래서 나는 녹색가게 옆에 사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제목을 꽃이라 할까, 천 원짜리 기부금이라 할까, 퇴근할 때 생각 했었다. 그리고 앉았는데, 한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수선하시는 할머니는 방학이라서 안 나오셔요, 했는데도 그 할머니는, 할머니가 멋 부릴 일 있냐 그냥 소매만 맞게 잘라 달라며 겉옷 하날 두고 가셨는데, 안감에 솜이 붙은지라 박음질이 쉽지 않았다. 오늘 아침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오신 할머니 수선된 옷을 입어 보시더니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는 입고 오신 가을 외투를 주시며, 실밥 자국만 남은 줄에 드르륵 박음질 모양을 내 달라고 하셨다. 그거야 쉽지 하며 또 박았는데 줄이 잘 맞지 않았다. 할머니 아무래도 수선비는 무료로 해야 겠어요. 이렇게 해 놓고 돈 받으면 저 욕 먹으니깐 돈은 그냥 냅두세요, 했는데 할머니 무슨 소리야 젊은 사람이 애썼는데 그냥 이라니, 하셨다.
가을에 얻어먹은 호박죽도 생각나고 해서 그랬던 것인데, 여든 중반이 넘은 꼬부랑 할머니 끝내 수선비 외에 천 원짜리 지폐를 더 주며 하시는 말씀, 이건 기부금이야 얼른 안 받을 거야 하는 게 아닌가. 캬… 기부금 . 할머니가 나가신 후,
내가 졌다 하고 앉아서 존 베이즈를 듣고 있는데, 울컥한 기운이 가슴으로부터 차올랐다. 한 번도 녹색가게의 성격이나 지향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할머니는 기부금 줄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디서 들었을까, 내가 혹시 할머니 앞에서 말한 적이 있었을까. 어쨌든 난 깜짝 놀라기도 했고, 감격을 먹어 돌아가실 뻔 했다.
내가 천 원짜리 지폐를 오른 손에 들고 할머니의 양볼을 급히 만졌을 때, 순간 종이돈의 뻣뻣한 끝자락에 긁히진 않았을지…
글의 제목은 할머니의 기부금이라 정할까 한다. 할머니의 마음은 순수했으니까, 금액을 적으면 불손해 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길게 글을 늘려가다 보면 잠꼬대로 이어질 우려도 있으니 쿨하게 마치기로 한다. 아, 나는 오늘 아침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또 생각한 게 있다. 김수영이 말했던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詩作法이란 무얼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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