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고트프리트 벤 <아름다운 청춘>外 2편

미송 2014. 5. 4. 09:32

 

 

 

아름다운 청춘

 

갈대밭에 길게 누워 있는 처녀의 입이

무엇엔가 갉아먹힌 듯 했다

가슴을 풀어헤쳐보자 식도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급기야 횡경막 아래 으슥한 곳에서

새끼쥐들의 둥지가 나왔다

거기 한 작은 암컷이 죽어 나자빠져 있네

다른 쥐들은 간과 콩팥을 먹고 살며

찬 피를 빨아마시고

여기서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지

시원스럽게 후다닥 그들도 죽어갔다

그들 모두 물 속에 던져졌는데

, 그 작은 주둥이들의 찍찍거리는 소리라니

 

 

작은 아스터꽃

 

익사한 술배달꾼이 테이블 위에 받쳐져 있다

누군가 그의 이빨 사이에

한 송이 짙은 연보라색 아스터꽃을 끼워 넣었군

긴 메스를 들고

피부 아래

흉곽에서부터

혀와 입을 잘라낼 때

그 꽃과 난 부딪쳤던 모양이군, 그럴 것이

꽃은 옆에 있는 뇌수로 미끄러져 내렸으니까

꿰맬 때

대패밥 사이 가슴 구멍 속으로

나는 그만 그 꽃을 싸 넣었네

네 꽃병 속에서 실컷 마시거라

편안히 쉬거라

작은 아스터꽃아

 

 

순환

 

이름 모르게 죽어간,

한 창녀의 외로운 어금니는,

금니였다

나머지 이빨들은 조용히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빠져 있었고

금니는 시체 치우는 사람이 뽑아서

저당 잡히고 춤추러 갔다

왜냐하면, 그의 말인데,

흙만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體公示所, 1912>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1886~1956)- 독일. 시인이자 해부학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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