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유 / 오정자
너는 사랑의 이유를 찾아다니지 말라
그것은 그믐으로 가는 달
꽃즙을 짜려고 큰 통을 마련하였으나
이슬로 녹는 눈물
사랑에 정답을 말하려 하였으나
발설되면 무너지는 음정
구할수록 궁해지는 구애의 울음
회항하는 철새들의 노래를 들으라
수수억년 흘러내려온 우리 전생을
산 하나 무너뜨리고도 또 수만 번
죽고 살고 만나는 동안 중중무진 쌓여 온
무늬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
확연해지는 너의 얼굴
그러므로 사랑의 이유를 찾아다니지 말라
꽃으로서 꽃을 찾지 말라.
하긴, 사랑함에 그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하지만, 지금의 세태를 두고 말하자면 도대체 그 사랑이란 게 있을까? 시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확연해지는 너의 얼굴 하나면 足하다고 할, 그런 사랑이 있기나 한 걸까? 사랑이란 이름의 복잡한 계약서만 넘쳐흐르는 이 시대. 설정된 계약에 위배되면 하시라도 그 사랑은 파기될지니...... 아니, 사랑인 척 했던 얼굴들 여지없이 서로에게 사납게 변해갈지니. 오늘의 현실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없는 사랑이지만, 시를 통해서나마 本然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일까? 굳이, 사랑의 이유를 말하자면 이유 없음이 바로 그 이유일지니. <안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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