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박설희 <죽음과 사랑 사이에서 외발로>

미송 2014. 6. 23. 18:44

 

 

죽음과 사랑 사이에서 외발로

 

 

 

박 설 희

 

 

   

1. 죽음

 

이상하다. 너무 고요하다.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투성이인데 겨울 추위가 꽁꽁 얼렸는지, 아니면 체감 추위가 혹독한 건지 소리가 없다. 침묵이다.”라고 지난 봄호 <이 계절의 시> 첫머리를 열었다. “고요해선 안 될 것 같은데 고요해서 오히려 불안한 나날에 대해. 그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두 달이 채 안 돼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그랬다. 작년 말 대학에 붙은 대자보로 시작된 이 물음은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를 달궜다. “단 하나도 안녕하기 어려운, 하나만 봐도 안녕하기 어려운 사태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정말 안녕한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가 한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 대자보를 작성한 고대 주현우 씨는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을 촉구하며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답들을 끌어낸 그 물음 이후로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 사고,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학대 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온세상이 들끓었고 세월호로 정점을 찍은 듯하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이 우리의 아이들이었다.

왜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희생되는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유사시엔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만 살겠다고 가장 먼저 대피를 하고 그들의 말을 믿고 끝까지 대기하고 있던 어린 목숨들이 수백 명이나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지난 겨울 이후로 지속된 내 불안의 실체가 이거였을까. 그러나 아직 뭔가 더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이 막연한 불안감. 우리가 집단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집단무의식은 어디에 닿아 있는 걸까.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죽음과 고통에 가득 찬 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깨어나 멍한 시선으로 자신 앞에 놓여진 삶을 견디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현실과 꿈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발과 경제 성장과 성공의 신화 아래 점점 짙어져가는 그늘, 죽어가는 생명들.

 

첫 매미가 울었다 찌르르

들짐승 날짐승 사람도 모르는 장마가 끝났다고

육칠년 캄캄했던 어린 매미들 오감을 다 여는데

첫 매미 이토록 더딘 이 이상한 온실

다시 비는 내리고 일찍 나온 매미들, 우화도 못한 채

번데기로 몸을 말고 땅에서 죽는다

(중략)

안전하게 안전하게

하우스 안의 청포도는 농약으로 살이 차고 낯익은 하우스 사람들

하나둘 은쟁반으로 사라진다 싸늘한 멸종

절반만 투명한 제국의 식민,

또 다른 비닐을 덧씌우는 오늘의 희뿌연 제초제

내 고향 7월이야, 하우스 제품이야,

  

 -양은숙, 하우스부분, 시와문화2014 봄호

 

암울한 시대에 청포도로 상징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이육사의 청포도와는 달리 내 고향 7은 농약과 제초제로 안전한 하우스 제품을 생산해낸다. 전설과 꿈이 알알이 박히던 청포도는 어디 가고 안전하게 / 농약으로 살이 차익어가는 이상한 하우스. 땅 속에서 수년을 기다렸다가 우화를 위해 일찍 세상에 나온 매미들은 번데기로 몸을 말고 땅에서 죽는다”. 만물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할 때인 7월은 정작 죽음과, 돈으로 환산되는 제품이 가득 찬 식민의 시간이 되고 만다. 두 청포도의 공통점이 있긴 하다. “제국의 식민이라는 배경을 깔고 있다는 것.

 

 

2. 고통 또는 개화

 

꽃이라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어서

꽃 피지 마라

별도 없는 이 밤, 꽃 피지 마라

동절기, 기어이 꽃 피었네

그렇게 눈물로 피는 꽃도 있어

가장 외로운 지점에서 어떤 개화는 시작된다.

 

한 번도 꽃핀 적 없는 나는

한 번도 열매 맺은 적 없는 너는

슬픔이 포자가 되어

오늘도 무성생식을 꿈꾼다

나 혼자 발효하고

너 혼자 착생하고

 

이 세상 가장 먼 길은

암술에서 수술에 이르는 길이어서

바람벽 가득 검은 곰팡이꽃

나는 당신이 꽃 핀 줄도 모르고

당신은 내가 열매 맺은 줄도 모르고.

 

-조연희, 곰팡이꽃, 문학in2014 창간호

 

겨울이든, 여름이든, 물기만 있으면 피는 꽃. 외지고 추운 곳에서 꽃 피지 마라고 주문을 외워도 저 혼자 피는 꽃. 아름답거나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가장 외로운 지점에서피는 무성생식의 꽃. 슬픔과 고통 속에 피는 남루한 꽃.

무엇이든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시는 무력감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시의 힘은 무력감에서 나온다”(존 버거)고 했던가. 어떤 면에서 시작(詩作)은 곰팡이꽃과 닮았다. 슬픔의 힘으로 혼자 발효하고 혼자 착생하는 꽃. 바람벽에 뿌리를 내려 바람의 기미를 늘 느끼고 살아야 하는, 그렇게 이 세상에 가장 먼 길을 홀로 가는 꽃.

 

3. 심연

 

저 사람은 왜 내 앞에서 저런 모습으로 죽어 있는가, 죽어 가는가 저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저 사람이 자꾸 나타난다 저 사람은 실재하는가 헛것인가 실재하는 헛것인가 저 사람은 만질 수 있는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상태로 자꾸 나타난다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는 지금 살아 있으므로 가만 보니 죽어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다

 

얼굴을 돌려보지 못한다 그가 누구인지 왜 두려운가 물에 빠진 채 엎드려 떠다니고 있는 저 사람을 건져내야 하는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야 하는가

 

그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 물 밖으로 그를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어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는 뒷모습이 전부다.

 

-조용미, 뒷모습, 시와시2014 봄호

 

시를 읽다가 소름이 돋는다. 마치 세월호 사고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상태로 자꾸 나타난다”. 그런데 뒷모습이 전부그를 구할 수 없다”. 이 때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는 시적 자아의 모습일 수도,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 물 위에 떠서 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아무도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우리들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외면해온 우리 모두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아닐까.

 

날갯짓을 멈춘 채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인간은 들여다본 적 없는

침묵을 본다 물밑 아득한 어둠 속

 

아직 떠오르지 못한

오래도록 케케묵은 전설(생략)

 

 -김림, 우포 늪에서부분, 시와문화2014 봄호

 

시원의 시간 속 오래 된 발자국을 더듬어보는 것. 그곳에 머물러 있는 신화와 전설 등에 귀 기울이고 그 오랜 이야기들을 퍼올리는 것. 고갈되어가는 생명에 힘을 실어주는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조해 보는 것. 이 지점이 문학이 설 자리다. 문학이 우리를 밤의 시간으로 데려다주는 것(권희철, 당신의 얼굴이 되어라)이라고 했을 때, 이성과 논리의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한 열림의 순간이라고 했을 때, 현재 이전의 어떤 미결정 상태 속으로 우리를 되돌려놓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간 너무나 낮의 시간에 익숙해 왔으므로.

 

4. 변화

 

물이 팔팔 끓는 순간부터 시계를 본다

1분이 지난다, 놀라며 흔들리는

2분이 지난다, 견디는

3분이 지난다, 2분 전의 그 달걀이 아니다

다른 우주다 회오리친다

4분이 지난다, 1분 전의 그 달걀이 아니다

엉기기 시작한다 인생처럼

5, 6, 7분이 지난다

가스 불을 끈다

매 분마다 죽음을 통과해

매 분마다 달걀은 변한다

찬물에 집어넣는다

찬물 속에서 다시 5

 

자주 내 이름을 잊는 엄마의 입속에

4등분한 달걀 반숙을 넣어드린다

엄마가 웃는다

괜찮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달걀도 엄마도 나도

물질도 정신도 마음도 우주도

존재한다면 신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그러니 있는 힘껏 잘 변해보자고

내 이름을 잊은 엄마가 천진하게 웃는다

 

-김선우, 나들의 시, 달걀 삶는 시간부분, 실천문학2014 봄호

 

 

가장 맛있는 달걀 반숙을 위해 걸리는 시간은 팔팔 끓는 물 속에서 7, 찬물 속에서 5분이라고 한다. 달걀을 삶는 7분 동안 달걀은 놀라며 흔들리고, 견디며, 회오리치며, 엉기며 매 분마다 죽음을 통과해변해간다. 달걀 반숙을 좋아하는, 치매에 걸린 엄마도 그러한 변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딸 이름을 잊은 엄마라도 괜찮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삼라만상과 신 역시 그러할 것이기에 그러니 있는 힘껏 잘 변해보자고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시의 화자는 아픈 마음을 달랜다. 달걀이 반숙이 되어가는 동안 변해가는 것처럼 우리도 삶을 통해 매순간 변해가는 것이기에.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변화해간다. 매순간마다 변하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외롭고 쓸쓸해서

망루 위에서도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매일매일 제 얼굴을 들여다보듯

위태롭게 한 사람의 내일을 읽으리라.

 

-여태천, 희망버스부분, 실천문학2014 봄호

 

5. 외발의 균형

 

학 같다

주저거리며 한 발을 들고 섰는 사람들

한소끔 왁자한 잡념들 가라앉으면

학은, 아니 학 같은 저 사람은

어느 곳으로 한 생각을 디뎌 놓을까

 

허방 허방 허방 허방

걸어온 길마다 찍혀 있는 헛디딘 발자국들이

팽팽하게 허리춤을 잡아당겨서

길은 허공 한 뼘 밀어내지 못하고

새순 같은 고민만 부풀리고 있다

 

잡초들의 한 생을 다 살아 보고서야

비로소 한 가지를 세상에 디디는

나무 한 그루의 길에는

뿌리가 걸어온 생각들 무성하다

언제나 한 발로 생각을 가누는 자세는

흔들릴지라도 넘어지는 일이 없다

 

멈춰 있는 모든 것들은 외발이다

저 학, 저 사자, 저 나무, 턱을 괸 저 사람

가만히 외발로 세상의 균형을 잡아 보다가

간신히 한 생각을 디디고 나면

다시 한 발을 슬그머니 들어 올리는

 

-권상진, 외발, 시와문화2014 봄호

 

죽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 과정이 생의 전부라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희덕의 말처럼 한 손은 사랑에게, 다른 한 손은 죽음에게건네야 하는 걸까.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여린 손등은 죽음 앞에, 거친 손바닥은 사랑 앞에내밀어야 하는 것일까.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사랑과 죽음으로 충만한 시간, .

권상진 시인은 삶을 관조하는 우리의 포즈는 외발이라고 한다. “멈춰 있는 모든 것들은 외발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멈춤의 순간이며, 온전한 존재로 서는 것이며 그것이 학이든 사자든 나무든 사람이든 세상의 균형을 잡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흔들릴지라도 넘어지는 일이 없는외발의 자세로 더디게, 천천히 더듬어간다. 미칠 듯한 속도로 질주하는 세상을 향해 촉을 내민다.

 

6.

 

러스킨의 말대로 예술의 두 가지 목적이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는 데 있다면 올봄 시인들은 아마 고통을 이해하는 데 온힘을 쏟아부었으리라. 현실은 상상력을 압도한다. 특히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사건들에서 그랬다. 세월호의 침몰은 최악의 시나리오였으며 우리들 대부분이 그 고통과 상처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근래 작고한 마르케스는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들 중 단 한 줄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작가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현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영광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운명은 겸손하게 그런 현실을 모방하려고 노력해야하며 그런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최고의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꿈을 빌려드립니다)

우리는 넘쳐나는 죽음과 끝 모를 심연을 탐색하면서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과학과 효율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신화 등 오랜 이야기들이 꼭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신화와 전설이 삶과 죽음의 의미, 선과 악, 인간과 신, 무의식, 인류의 시원 등을 더듬어보는 근원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병을 치유하고 질서를 회복시키는 모성의 시간,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끈이 필요하다.

 

박설희 1964년 강원도 속초 출생. 2003년『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