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커피 이야기 / 오정자
투정부릴 수 없을 만큼 맑게 갠 일요일 오후였다
바람은 엉뚱한 곳에서 불어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 다가올 것인가 과연
하며 프림을 넣지 않은 커피로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깨우고 있을 때
배부른 후 야생동물들, 그 옆 내일의 양식을 담은 냉장고가 졸고 있었다
광합성 하는 식물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상큼함을 위해 비우기를 배우기로 하며
정글 가운데서의 자기 회상법을 익히며 사라지는 여름을 건지고 있었다
사물의 우매와 명석성을 분별할 수 없을 땐 너그러운 언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혼란을 전복시킬 다른 길은 없을까 부박한 토양을 버리고 정신을 투기할만한 곳은 어디일까 찾고 있을 때
알레고리한 얼굴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말들이 바닥나고 논리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모든 토론이 무위로 돌아가고 있을 때
죽음 뒤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낯선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지루한 노역 속에서도 커피의 수위를 조절하듯 공복에 검은 매혹을 느끼듯
하루치의 불순한 음료들을 뱉어내던 그 여름
말갛게 떠오르던 소망
강물이 아름다운 건 미래의 평화 때문이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를 점찍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20110628-201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