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이랑 / 김승일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 엄마는 아들이 맨날 편지를 써준다더라. 엄마 제가 잘할게요. 사랑해요. 그런 거 써준다더라. 너는 왜 나한테 편지를 하나도 안 써주니? 속상하다. 그러면 저는 엄마한테 항상 이렇게 답했습니다. 엄마 나는 식상한 표현 같은 거 써주기 싫어요. 사랑해요, 잘 할게요 이런 거 써주기 싫어요. 마음이 표현 되는 것 같지 않아요. 내 마음은 그런 식상한 단어들로 표현 될 수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이 표현되는 것 같지 않아요.
김행숙의 시 「하이네의 보석 가게」 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언니, 언니는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저는 이 구절을 보고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정말 그러네.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 같아. 우리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수천 번을 말해도 그 사랑의 진심이라는 건 쉽사리 전해지지 않지. 짝사랑에 빠진 사람은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자꾸만 빙빙 돌려서 구애하기 마련이야. 힘들다고 제발 나 좀 봐달라고. 술에 취해 직설적으로 실토하면 그 말이 얼마나 찌질한지. 사랑에 실패한 사람에게 한국어로 된 모든 말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한국어로 무언가를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고백이 사랑 고백이든 고해성사든 상관없이, 진심이 전해지는 고백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쓴 글들이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하고 각별한 얘기가 아니라 그저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그런 글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Chicaloyoh is Alice Dourlen’s solo project. Creating music between soundscape exploration and intimate contemplation, Chicaloyoh is a mix of guitar, keyboards and percussions from distant and various horizons. Chicaloyoh is a one woman band that will attract those who like the priestess singings of Inca Ore or Nico. Together with High Wolf she plays as Woodoo Mount Sister, who toured Europe and the USA last summer. Chicaloyoh has already released tapes on Bumtapes, Dial square tapes, Clay Ruby’s (from Burial Hex and Second Family Band) label Brave Mysteries, and more recently, full-length LP's on the french label Faunasabbatha and Shelter Press.
김승일 시인 1987년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나 2003년에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2012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문학』신인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는’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에듀케이션』이 있다. 최근 박성준 시인, 김엄지와 함께 산문집 『소울 반띵』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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