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안이 / 심보선
자니 캐시가 흘러나오는 오를레앙의 카페에서
나는 한없이 안이해진다
커피를 몇 모금 마셨는데 첫 모금이 어제 일 같다
오늘 아침 빵 굽는 노인이 내게 말했다
생각은 멀어질수록 단맛으로 변하고
빵은 멀어질수록 쓴맛으로 변한다
그는 오로지 빵의 관점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그것을 나는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여겨왔다
아침은 특히 밤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채
꿈의 뻣뻣한 뒷목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너는 적어도 오늘밤은 죽지 않을 거여
습관적이고 연속적인 순간들
쉽사리 떠오르는 과거들
사랑과 무관한 상실들
그런 것들을 떠벌리며
개자식들이 담배를 나눠 필 때
어쩌면 인생 전부가 여기서 간단히 끝난다
자니 캐시, 내가 명명한 오늘 아침의 이름
그는 안이하게 죽지 않았으리
아침은 그의 죽은 이마 위에서 뜨거운 빵이 되었으리
나는 카페 주인장에게 한국어로 말하고
그는 나에게 프랑스어로 말한다
이 노래 자니 캐시야?
위위, 자뉘 까쉬
우리는 낄낄낄 웃는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웃을 수 있다
처음 만난 두 명의 소년처럼
아침, 그 남자를, 그 여자를 잃어버렸다
하심! 사샤! 시몬! 로자!
나는 이제 모르는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잠에서 깬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만 모아 다시 살고 싶다
커피 값을 지불하고
무조건 강기슭으로 향한다.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2017 문지>
20171207-20211030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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