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에게 / 윤제림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
용서해라.
蓮.
누가 이 시를 읽고 “연(蓮)이가 늙었나? 몰라보겠다니.”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이 시를 이해하고 싶었던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너무 적나라하게 말해버린 그 친구가 미웠습니다. 안 그래도 나이 들어가는 게 서러운 제 앞에서 꼭 그렇게 경박하게 읽어야 하는지 분노가 일기도 했습니다. “원숙해져서 그랬겠지. 싱싱하고 풍성한 나뭇잎으로 뒤덮였는데 그 가냘픈 가지를 어찌 알아보누?” 누가 옆에서 그 친구를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나이 들어 혹시 첫사랑과 재회한다면 풍성한 잎과 열매를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늘어난 주름살을 헤아리시겠습니까? 상대가 여러분에게 진정한 꽃이었다면 답은 너무 분명해 보입니다. <시인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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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신청서에 들어갈 반명함이긴 하지만 참 오랜만에 찍는 사진이라, 무슨 기념일인가 착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은 대개 솔직하게 나왔는데, 당사자는 오히려 어리둥절했습니다. 솔직히 누구시지....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진사 아저씨가 또 한참 작업을 했습니다. 목주름살부터 지우더니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지우고 턱살도 깎았습니다. 그러나 볼테기 살은 어쩌지 못하더군요. 이력서에 붙일 사진이니 부디 '자알' 찍어주셈, 했는데, 그 '잘'이 억지로 안 돼 작업 시간이 좀 걸렸을까요. 사장님이 나의 얼굴로 장난을 치는(신중을 기하는) 동안 저는 속으로 '이렇게까지 고치면서 늙은 면상을 드밀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어느 순간 자신을 몰라보기도 하는데 남은 날 어떻게 알아볼까, 아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원래가 그 면상이었거니 할테니 알고 모르고는 무관하겠지. 자격지심에 연락이 없으면 그게 다 늙은 면상 때문이려니 했는데, 저녁 여섯 시에 찍힌 문자를 늦게서야 확인했습니다. <원주시 여성가족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동복지교사 채용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늦지 않게 면접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주 12시간 단시간 근무라 현재 하는 일에 누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지원을 했는데, 오늘은 얼굴 한 번 보자, 합니다. 면접관들이 부디 날 세상 속 진정한 꽃으로 봐 주었으면 합니다. 몰,라,보,겠,다,용,서,해,라, 쌩까는 걸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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