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 자료실

모니카 페트,『행복한 청소부』를 읽고

미송 2014. 12. 27. 10:19

 

 

 

 

푸른 빛 물살 속에서 푸른 빛 잠을 자고 푸른 빛 꿈을 꾸었다

펼친 그물 속으로 푸른 고기떼들 밀려올 때 양들의 발자국 소리 

이상하고 소란스러운 언어들이 사랑하던 사람들을

갈라놓을 듯 하였지만 독백은 또 다른 독백 속 깊고

청아한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내린다

달빛 스러질 무렵 노인이 오두막으로 들어가 푸른 빛 꿈과 만난다

릴케의 푸른 장미를 들고 와 뺨과 이마와 메마른 입술에 애무해 줄

아이 하나 기다린다

 

파란색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파란색 고무장화를 신고, 파란색 사다리와 파란색 물통과 파란색 솔과 파란색 가죽 천을 손에 쥔 청소부아저씨를 상상하는 순간, 예전에 쓴 시 한편이 떠오른다. 꿈을 상징하는 색깔이었을까. 하늘, 바다, 무지개, 보릿대 타는 풍경이었을까.

 

아저씨를 행복하게 하던 이름들에는 ’ 스키라는 강세음이 들어가 있다. 독일어 발음은 왠지 춥다.

 

독일의 모니카 페트가 지은 행복한 청소부를 읽었다. 아저씨의 동글납작한 주홍 코가 파란 꿈 이미지와 대비되는 그림책 표지. 그림책 하면 의례히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앉았을 때나 읽고 접어두곤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한 번 두 번 읽을 때마다 그 안에 보물들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아 얇고 두꺼운 책장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마흔 셋의 새로운 경험.

 

, 다시 보니 청소부 아저씨가 출근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도 파란색이다. 흐흐. 지은이의 집중력이 대단하다. 그의 일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단순노동이다. 표지판을 닦다 철자 하나가 지워지면 행복이란 표지의 이름이 금세 작곡가의 이름으로 바뀐다. 그러나 그 작곡가에 대해 어린 아이보다도 더 모르는 그.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자기가 닦는 거리의 표지판을 사랑하던 아저씨는 문득 이대로는 안 돼 하면서 자기 안에 혁명을 일으킨다. 그 때부터 아저씨는 표지판의 이름을 메모하기 시작한다. 글루크-모차르트-바그너-바흐-베토벤-쇼팽-하이든- 헨델. 이번에는 작가들 이름 그릴파르처--바흐만-부슈-브레히트-실러-슈트름-캐스트너. 피상을 걷어낸 사랑이 구체적으로 조각된다.

 

사람이 그 무엇에 빠지면 사다리 끝에서도 노래가 나오는 것일까. 글은 언어로 쓰인 음악음악은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구나, 아저씨는 어느 날 깨닫게 되고, 애지중지 닦던 무의미했던 이름들이 꿈틀꿈틀 품에 안기기 시작한다. 일을 하면서 늘 작가나 음악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소곤소곤 중얼중얼 묻기도 하고 대답도 하면서. 이제 그가 표지판을 닦는 일은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되었다꿈을 꾸는 시간이 된 것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거리를 지나던 어린애들은 아저씨의 휘파람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 멈추었다. 사다리에 올라 하늘을 보며 떠들어대는 아저씨의 대화소리를 엿듣기 시작했다.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강연을 한 줄도 모르고 사다리를 내려오는 아저씨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주홍 코가 산딸기처럼 시뻘게진 아저씨는 더욱 더 분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듣고 있으니 혹여나 잘못 말하면 안 되지, 하면서 시립도서관엘 드나들기 시작하고 레코드 플레이어를 사기도 하며, 열심히 공부를 한다.

 

어느 날 방송국에서 오늘의 인물기자가 나타나서 아저씨를 카메라에 담아간다. 이제는 더욱 유명해져서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이 온다. 그러나 아저씨는 거절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그가 매일 닦는 표지판에 머물렀다. 그의 파랑새는 그의 가슴 속에서 영원하였다. 그리고 행복하였다.

 

어제 젊은 작가가 인터뷰한 64세의 김신용 작가를 만났다. 사이버 문학광장을 돌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60, 70, 80년대의 피폐하고 극빈했던 삶의 뒷골목을 기록한 그의 책들과 몇 편의 시를 알게 되었다. 그 중에 기상천외한 삶의 한 풍경이 남는다. 서울의 양동 풍경이다.

 

살과 살이 맞부딪칠 때 쏟아지던 소나기 그친 뒤

거기 피어오르던 무지개를 보았나요

양동 뒷골목, 그 음습한 그늘에 웅크린 아이에게

콘돔 심부름을 시키는 어머니의 손짓 따라

약국을 향해 무지개의 다리를 건너가던

깡총 걸음을 보았나요

그 무지개 스러진 뒤, 사라져버린 아이를 찾아

미친 듯 거리를 헤매는 늙은 창녀의 몸부림을 보았나요

 

김신용의 무지개전문이다. 창녀가 아이가 있으면 몸 팔기 힘들어 아이를 구걸하는 사람에게 빌려주기도 하고, 젖먹이를 제 아이인 냥 업고 다니며 껌을 팔거나 볼펜을 팔기도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불과 30, 40년 전, 가난으로 덕지덕지한 시절의 이야기다. 몸뚱이 하나 밑천삼아 밑바닥을 기며 살던 우리들의 이웃.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하고 신자유주의를 구가한다는 오늘 날, 그 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뒷골목의 음습한 냄새와 어두운 빛을 뚫고 나온 무지개가 시를 화사롭게 해준다. 명암의 차이와 시어의 충돌이 산뜻함을 준다. 그러면서도 엿보는 독자에게는 결국 막막한 슬픔을 던진다. 무지개가 스러진 뒤, 사라져버린 아이. 무지개가 스러지고 나면 아이도 사라진다. 무지개와 아이는 꿈, 늙은 창녀의 사라진 아이는 그녀의 꿈, 이었다. 나흘치의 국밥을 위해 자신의 정관을 잘라서 팔며 지게꾼으로 날품팔이로 살아 온 작가 김 신용. 그의 문학과 인생이 치열하다. 그의 문학은 절망의 힘으로 자랐다

 

그 칠흑 같은 밤과 지독한 가난이 피어올린 무지개를 시간을 넘어 우리가 지금에야 보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와 작살난 인생 시나 실컷 쓰다 죽겠다는 김신용 할아버지. 그들을 숨죽이며 엿보던 나는,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무위와 무명자의 행복을 가늠하고 있다.

 

2008. 7. 13 오정자  수필 「 꿈을 꾼대로 살면 돼 

 

 

행복한 직업의 세계를 찾아서

- 모니카 페트,행복한 청소부(풀빛, 2000)를 읽고


  모든 학생들이 장래 직업으로 대통령이나 장군 또는 대기업체를 이끄는 사장만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희망 직업이 다양화되고 있다니 변화가 반갑다. 하지만 직업의 귀천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교정시켜 줄 좋은 책으로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가족이 함께 보기에 더 좋을 책이다. 어린 학생들보다는 직업 선택을 앞둔 청소년이나, 직업을 갖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다보면 절로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현재 나의 직업에 불만족스러워 했던 적은 없는지, 생활의 보람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는지 등등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또한 좋은 직업을 통해 삶의 성공을 이뤄야 한다고 아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던 삶을 반성하게 된다.


  행복한 청소부을 읽다보면 처한 환경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회나 인류를 위해 공헌한다는 것은 무슨 대단한 업적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즐겨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화를 읽는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느낌을 공유하려면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권하고 싶다. 직업의 세계라든가 직업의 귀천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읽었다가는 결코 감동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가 음악과 미술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그 삶 자체가 동화적이다. 글루크, 모차르트, 바그너, 바흐, 베토벤, 쇼팽, 하이든, 헨델의 음악 세계와 접하면서 이미 파란색 청소부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괴테, 그릴파르처, , 바흐만, 부슈, 브레히트, 실러, 슈토름, 케스트너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면서 그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독서 전에 책이 언급하고 있는 음악가와 작가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들여다보면서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책읽기가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파란색 자전거를 타는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는 직장의 일을 즐거운 생활의 하나로 승화시키고 있다. 청소를 하면서도 혼잣말처럼 음악과 문학에 대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어느새 그의 즐거운 삶에 주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할 만큼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파란색 작업복의 청소부는 교수직을 거절한다.


   “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인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파란색 작업복 청소부. 그의 삶이 부러워 그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얘기는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는 동안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 16321677)를 떠올렸다.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갈고 다듬는 세공사 일을 하면서도 독서를 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글을 쓰지 않았던가.


   1673년 경 하이델베르크의 철학 교수직 제안까지 받았지만 스피노자는 행복한 청소부처럼 거절했다. “교수라는 자리가 지극히 거룩한 자리인 줄 알지만 그래도 남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사상의 자유가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는 이렇게 안경을 갈아서 밥을 먹고 지내는 것에 만족하며, 나의 직업도 교수자리 못지 않게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밝힌 것이다. “공공의 영역에서 가르치는 것은 결코 소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훌륭한 기회를 받아들이도록 제 자신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는 스피노자의 단호함에서 행복한 삶을 읽는다.


   아직도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까? 아직도 직업이나 직급에 따라 좋고 나쁜 가치를 만들어 스스로의 행복을 제한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한 청소부를 만나 그가 즐기는 삶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행복한 청소부가 빠져들었던 음악과 문학의 즐거운 세계로 찾아가 보면 어떨까?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이런 청소부가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 같은 안경알 세공사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짜장면 배달에 충실하던 사람을 대학강단에 초대한 적이 있다. 또 태백과 정선에는 시를 쓰면서 행복한 삶의 파장을 그려내는 광부도 있다. 정환구 시인과 성희직 시인이 그들이다.


   우리 주위에는 동화 속의 행복한 청소부나, 스피노자 같은 안경알 세공사가 참 많이 있다. 일터에서 활짝 웃음 짓는 행복한 그들, 행복한 목소리로 좋은 하루!’ 하고 외치는 그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은 행복한 청소부이며 철학자 스피노자이다. 동화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야겠다.

 

강릉대 정연수 교수 <2008년 독서지도 담당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