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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가르친다, 어떻게?

미송 2014. 12. 16. 22:51

 

 

 

 

책 읽기를 가르친다, 어떻게? 

 

                                                       "그대는 아이와 같이 되려고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칼릴 지브란

 

 

 

스스로 책 읽기의 가치와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라면 아이들도 책을 통해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삶을 풍요롭게 꾸려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술적인 방법으로 가르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어느새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현실은 책 읽기마저 입시도구로 만들어버리려는 듯하다. 단계에 따라 가르치고 그 결과를 눈에 보이는 수치로 확인하려 든다. 책을 만나는 계기도 경험이나 느낌도 아이마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데 책을 읽어서 얻는 것을 과연 어떤 잣대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히고 싶은 게 어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하지만 책 읽기가 아이들 삶에서 뜻을 가지려면 먼저 자유롭게 책을 만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까지가 어른들이 할 몫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읽어야 할 책을 골라 읽히기에 앞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아이들은 스스로 자극을 받아들여 배우는 힘을 타고난다는 사실이다. "이게 뭐야?, 이건 왜 이래? 내가, 내가!" 어린 아이들과 지내는 사람이면 온종일 끊임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보는 것마다 궁금하고 만져보고 싶고 무엇이든 제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한다. 호기심은 스스로 세상을 만나고 배우게 만드는 힘이다.

 

미국의 대안학교 ‘알비니 프리스쿨'의 이야기를 담은 책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민들레>에서 조셉 칠턴 피어스는 모든 아이들이 배움에 ‘하드와이어드 hardwired'되어 태어난다고 말한다. 어머니 자궁 안에서부터 저마다 필요한 것을 배워 나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그 잠재능력이 자연스레 전개되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굳이 전문가들 말을 빌지 않아도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미 배움에서 떼어놓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걸 말이다.

 

아이들이 타고난 잠재력이 가장 빛을 내는 건 ‘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될 때다. 아이들은 본디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놀면서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무엇이든 잘 할 수 있게 된다. 책읽기도 다르지 않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때 놀이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할 책들이, 어른들이 자꾸 아이들을 나무라고 협박(!)한다. 책 읽기가 또 하나 과업이나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삶으로 녹아들기 바란다면, 아이들 스스로 책을 펼치고 싶은 동기와 열정을 갖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이나 메시지를 놓치지는 않을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타고난 호기심에 굳은살이 박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틀에 맞춰 잘려져 나갈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은 호기심을 다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걸 시도할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다르다. 몸도 마음도 빨리 자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금 느리지만 때가 되면 더 자라는 아이도 있다.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재촉하면 그 잠재력은 움츠러들고 만다. 평가받는 데 길들여진 아이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배우고 싶어 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책을 만나는 이유도, 책을 읽고 싶어지는 시간이나 공간도, 책을 읽고 난 뒤 느낌이나 반응도 저마다 다 다르다. 품에 안겨서 듣는 책읽어주는 소리가 좋아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숙제를 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정보가 신기해서 그 옆에 있는 책까지 손을 뻗기도 한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 벌레를 좋아하는 아이, 저마다 좋아하는 게 나오는 책을 있는 대로 뒤져 찾아든다. 종이접기나 뜨개질을 좋아해서 교본을 찾아내 닳도록 들고 다니며 노는 아이도 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혼이 나고는 자기하고 꼭 닮은 주인공을 만나 위로를 얻기도 하고, 상상 속에 그려보는 세상을 찾아 옛이야기나 판타지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소개한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다. 그 권리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로 시작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읽을 권리(번역본에는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라고 옮겨져 있다),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정해진 목록대로 책을 읽고 시험 치르듯 평가를 받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이 평생토록 책을 가까이하면서 삶을 풍성하게 가꿀 수 있을까. 그 답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게 된 많은 어른들이 이미 경험으로 알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게 하려고 서두르고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 같으면 뭔가 가르치는 노력이 모자란 게 아닌지 불안하다. 죄책감마저 느낀다.

 

그저 많은 책을 안겨주는 것보다 자신에게 필요하고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기쁨을 알고 풍부한 자료 속에서 스스로 자료를 골라낼 능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기가 읽을 책을 직접 찾고 고르는 일을 충분히 경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한다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단계별로 골라놓은 책 목록이나 책을 제대로 익고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다. 책을 보면서 읽고 쓰는 법을 익히고 책에 담긴 내용을 외우도록 재촉하고 확인하려 들면, 아이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빼앗기고 만다. 스스로 책읽기가 즐거워지는 나름의 계기를 갖지 못한다면, 주어진 동기유발 요인이 없어지고 나서도 책읽기가 이어지기는 어렵다. 책을 좋아하고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마저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8년째 도서관을 꾸려오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 언제나 답은 아이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타고난 호기심을 키우고 잠재력을 펼치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만드는 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도록 둘레에 풍부한 자료를 채워 넣는 일, 그리고 어쩌면 ‘한 아이의 운명을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르는' 책과 아이들이 좀 더 쉽게 만날 기회를 늘어놓는 일. 그렇게 아주 기본적인 일에서 출발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만나 온 아이들은 그게 전부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 다음은 아이들에게 맡길 일이라는 걸.

 

 박 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