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종삼 <5학년 1반>

미송 2023. 9. 7. 11:00

 

                                                                    

5학년 1반입니다.
저는 교외에서 살기 때문에 저의 학교도 교외에 있습니다.
오늘은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므로 오랜만에 즐거운 날입니다.
북치는 날입니다.
우리 학굔
높은 포플러 나무줄기로 반쯤 가리어져 있습니다.
아까부터 남의 밭에서 품팔이하는 제 어머니가 가물가물하게 바라다보입니다.
운동 경기가 한창입니다.
구경 온 제 또래의 장님이 하늘을 향해 웃음지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져온 보자기 속엔 신문지에 싼 도시락과 삶은 고구마 몇 개와 사과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옮겨 놓는 어머니의 손은 남들과 같이 즐거워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품팔이하던 밭이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고구마 이삭 몇 개를 주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잠시나마 하느님보다도 숭고하게 이 땅 위에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구경 왔던 제 또래의 장님은 따뜻한 이웃처럼 여겨졌습니다.

 

 

 

랭보와 백석 프랜시스 잠의 시편들을 떠올리게 하는 김종삼 시인. 호흡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렇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던 가을운동회는 한 해의 마지막 축제 같았다. 나의 기억 속 펄럭이던 만국기와 점심을 먹기 전 열렸던 바구니 터뜨리기, 요이땅을 알리던 총소리가 이토록 생생한 것은 시의 정다움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늙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느님보다도 숭고한 어머니, 그 어머니로 인해 또래의 장님을 따뜻한 이웃으로 바라보게 되다니, 인류애란 거창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오>

 

20150913-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