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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구령(扶溝令)
부구현령 아무 제(薺)는 그 성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력(大曆) 2년(767)에 죽었다. 그로부터 반년 뒤에 그 부인은 꿈에서 제와 만났다. 제의 부인이 저에게 저승에서 죄를 받았는지 복을 받았는지 묻자, 제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아생전 진사(進士)로 있으면서 경박함에 빠져 문장을 훼손시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헐뜯었기 때문에 지금은 저승의 부림을 받고 있소. 저승에서 매일 뱀 두 마리와 지네 세 마리를 내게 보내어 몸에 난 일곱 구멍을 출입하게 했는데,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소. 저승의 법에 따르면 360일 동안 마땅히 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벌이 끝난 뒤에야 비로서 환생할 수 있게 되어 있소. 근자에 다른 일로 염라대왕께 매를 맞았는데, 이전부터 입고 있던 잠방이의 여기저기가 찢어져 나가는 바람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으니 내게 잠방이 하나만 만들어 주시오.”
부인이 말했다.
“만들 수 있는 천이 없습니다.”
제가 말했다.
“전날에 만년현위(萬年縣尉) 개우현(蓋又玄)이 명주 두 필을 가지고 왔는데, 어째서 없다고 말하시오?”
제는 또한 불상을 주조하고 법화경(法華)을 써 줄 것을 함께 부탁했다. 제의 부인이 이 모두를 허락하자 제는 그제야 떠나갔다. (『광이기』)
- 태평광기(太平廣記) 中
당나라 이전까지의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소설 설화 전기 야사등을 모아 92항목으로 수록하고 출전을 밝혀 놓은 태평광기는 총500권이다. 이야기의 공통적 분위기는 황당하다. 이야기가 끝났나 보면 그렇지 않고, 뻥이 심하다 싶은데 보고寶庫란 느낌이 드는, 태평광기 속 이야기들.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 진담과 농담의 경계가 없다. 문장을 훼손시킨 죄 다른 이들을 헐뜯은 죄 때문에 저승에서 부림을 받고 틈틈 매까지 맞는다니. 부인에게 잠방이를 지어달라고 조르다니. 더군다나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는 명주 두 필에 대한 기억력은 산 사람을 으스스하게 만든다.
어제는 법화경에 대해 들었다. 오전에 티스토리에 법화경을 검색하였더니 위 이야기가 떠서,
20140112-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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