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태어나는 것은 이 우주에 없다
ㅡ 아내에게 / 이승하
또 머리카락들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군
저절로 태어나는 것은 이 우주에 없지
살비듬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져 먼지가 되기까지
새 살이 죽은 살을 밀어내는
짧지 않은 과정이 있었던 것
먼 조상의 유전적 정보까지 지녔을까 살비듬들
방을 닦는다 이 작은 살비듬이
우주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강이 있어서 바다가 있듯이
부부는 둘이고 부부는 하나
한 사람이 죽을 때 한 사람이 지켜보리
하나의 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별 하나가 죽어 하늘 한쪽이 텅 비는
아픈 시간들의 무덤 만들기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이겠지
별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밤의 하늘이 깊다
하나 속에 전체 있고 전체 속에 하나 있다
내가 죽은 빈자리는 또 누군가 메우게 마련
그대와 나 사후에 어둠 된다면
같이 떠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의 걸레에 의해 닦여질 테지
이 많은 미세먼지의 화엄세계에서
-이승하 시집 <사람 사막>
2023년 5월8일 월요일 일기
심심찮게 바닷가를 찾곤 하는 우리는 어제도 바다로 핸들을 돌렸다. 바람에 물결치는 바다 아름다웠다. 15년 전 우리의 주 외식 메뉴였던 짜장면, 그 추억을 떠올리며 바닷가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 우리는 정치 유튜브 채널을 끄고 법륜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모든 사람이 미움 때문에 미움과 분노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법륜 스님의 우문현답 같은 답변을 엿들으며 내 안에 상처들을 들여다보았다. 인생 제반의 문제들은 종국엔 자기 수양의 과제를 남긴다는 것. 미움과 분노가 ‘자기 사랑’으로도 극복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시의 제목도 좋고. 화엄세계 이야기에도 공감이 가고. 약간의 공감만으로도 자기를 도닥거릴 의지가 생기고. 다행한 일이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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