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수영 <책>

미송 2022. 10. 4. 18:43

 

- 김수영(金秀映)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이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눈

그때쯤해서 꽃눈이 깨어났겠지요 때늦은 봄눈이었구요

눈은 밤마다 빛나는 구슬이었지요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지요.

 

 

이미 쓰여진 것의 다시 쓰기 다시 해석하기가 문학이라고 했던 보르헤스는 세상을 신의 비밀스런 글쓰기에 기초한 상징체계로 보았다. 심지어 존재와 부재의 구별까지 거부한 보르헤스의 카발라적 관점으로 보자면 우주는 한 권의 책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우주는 각각의 자연적 정신적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세상은 거대한 알파벳, 인간이 만든 음절은 제한 없는 의미의 회로망에 둘러싸여 있다.

 

 맞고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다가 꿈에서 깼다의도한 바 없는 장면들이 왜 멋대로 등장했을까말이 안 되는  꿈 뿐일까김수영의 입체적인 시도 그렇다칼 맞은 남자는 누워 있었고 싸우던 두 남자는 밖으로 다시 뛰쳐나갔다. 뛰쳐나간 두 남자들은 꿈 밖에서 아직 싸우고 있을까. <>

 

20151009-202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