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안희선 <한로에서 입동까지>

미송 2022. 10. 6. 15:50

 

 

 

한로(寒露)에서 입동(立冬)까지 / 안희선

 

지루한 세상에서 한참을 서성이고는
꿈을 닮은 마음 뒤켠의 사연을 쏟아낸다
한 번도 하늘에 닿지 못했던,
빈 주먹의 기도(祈禱) 같은 것들

그것들을 미행하다 보면
몸살나는 가슴파기가 있다
멀리서 보면,
하얗게 파헤쳐진 가슴 같은
화석(化石)이 있다
시간을 낚다가, 뜬 세월에 묻히는
한숨 소리 같은 게 있다

먼 곳에서 도착하는
낯선 빛의 물결이
한 줄기 가슴의 내명(內明)이 될 때,
조용히 다가서는 침묵

영하의 체온이 차라리 따뜻한
한로의 시간엔
잠을 설친 시계도 진하게 웃는다
멈추지 않는 넉넉한
눈물 속에서
궂은 몸 털어내고,
선명하게 현신(現身)하는 한 켤레

 

.

.

.

낡은 신발, 입동에 선다.

 

 

누군가에겐 놀이의 도구이고 누군가에겐 구원의 음성 같기도 한 시().  요리하듯 저마다의 진행형인 시 .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godot)처럼 쓰는 자의 고도는 있기나 할까. 빈주먹의 기도 같은 것들가슴파기. 가슴 같은 화석.  낯선 시어들이 아프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대신, 생수와 한 줌 햇살과 미소 얹은 요리라면 안심일 텐데

 

눈길을 채비하는 신과 발. 그 발자국 안에 아프지 않은 햇살 하나  머물길...  <>

 

 

20211007-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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