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맨 혹은, 여자 / 오정자
내가 그렇게 쓰고 맛없는 커피였니?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회의에서
당신 에스프레소 맨이네 하는 소릴 들었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느새 귀가 어두워졌는지
익스프레스로 들렸다 이삿짐센터 이야기를 하나 헷갈리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에스프레소 맨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누구는 깍두기라 힌트를 주기도 했는데, 그 뜻은 또 뭐야 했는데
알고 보니 나쁘지 않은 별명,
기분 좋은 호명(呼名)이었네.
에스프레소(Espreso)가 익스프레스(Express)로 들렸다는,
해학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커피와 이삿짐센터는 아무리 꿰맞추어도, 그 이미지가
서로 연결이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침 회의에 은은히 감도는 커피향이
가득하다 (뭐, 회의 주제야 딱딱한 것일런지 몰라도)
話者는 회의 중에 유난히 튀는 사람으로 눈총을 받았나 보다
아니, 화자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여겼는지도
'내가 그렇게 쓰고 맛없는 커피였니?' 라고 자문(自問)하는 걸 보면
그래도, 힌트로 부여된 깍두기란 별명에 그리 기분 나쁜 것만도
아니었던듯
아무튼, 詩란 건 그런 거 같다
추상적인 뜬 구름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 속에 삶의 체취가
물씬하게 녹아든 이야기일수록, 살아 숨쉬는 생명을 지닌
목소리가 된다는 거
단조롭고 심상(尋常)한 일상 속에서도 사람과 사물을 통해서
획득하는, 삶의 발랄한 향기가 좋다
문득, 나도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
원두커피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자판기 커피라도......
하루 동안 마시는 커피의 양 커피의 종류가 인간 수명과 상관이 있다는 발표를 작년 11월에 이미 보았다. 단, 3잔 미만 5잔 이상은 또 그와 상관관계가 없단 단서도 방금 전 재확인하였다. 그땐 왜 그 단서를 빠트리고 읽었을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커피 속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의 일종인 클로로겐산, 마그네슘 등 생리활성 물질들이 인슐린 저항성과 체내 염증을 줄여주기 때문에 장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밝혔었다. 일년 전 발표 내용 그리고 방금전 허핑턴포스트지에 오른 '커피에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스크랩해 두기로 한다. 단, 크림·설탕이 없는 '블랙커피'를 하루 3잔 이상 마셨을 때 라는 단서가 오늘 기사에도 붙어있음을 확인한다. 블랙인 척 마셨던 커피에 난 매일 설탕을 두 숟갈씩이나 넣어 먹었으니. 설탕 들어간 블랙커피는 블랙커피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당뇨병을 만들어 준다니. 이크 내일부턴 설탕을 빼야겠다. 20110908-20160307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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