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일기

희선 <견해 3>

미송 2009. 7. 19. 19:38

연애 / 오정자

 

집 주변 포클레인 소리
쿵쿵 쾅쾅 쿵 콰앙
집 다 지어질 동안 그 소리
견뎌야 한다
언제나 조용해질까
206동 610호 아래 땅 파는 소리
박아박아박아
정력도 좋아라
반응하기 따라 소음도 고요로 변하니
오늘도 나는 자기自己와 연애중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실, 점잖음과 고상한 말로
중무장을 한 시를 대하면...
하품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일찌기 申東曄 시인 같은 이는
'껍데기는 가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요,
시란 건 무엇보다 약동감과
청신감을 느끼게 하는 게
詩의 그 정당한 목적일 거에요.

새로운 의미는 새로운 단어와도 같은 것.

시와 시의 素材는 서로 바꿔 놀 수 있는,
말(言)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연애]에 관한, <한 매력 있는 見解>에
머물다 갑니다.

 

 

 

 

입, 그 여자 / 오정자

트리피스 누런 잎 한 장 떼어내며
죽음을 확인한다
죽음을 맞게 한 건 내가 아닌데,
물렁한 줄기를 눌러본다
두 달 전 선물로 들어올 때부터
한 쪽 끝이 많이 찢어졌었다고
그이는 죽음의 이유를 말했고
떼어낸 이파리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네가 죽었다고 말하면 죽은 게지,

한 입 통 속으로 이파리가 사라진다
잎, 떼어낸 자리에 홀연 콩나물 대가리들 올라온다
잎, 다른 초록 광채들 여백이 숭숭하고
갈증이 활달하다

2007년 초겨울 그녀 도도하고 말라깽이 같은 어깨 치세우고 우리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알아봤어 목소리 건조하고- 4년 전 자기를 배반했던 남자와 우연히 대판 싸우고 온 사람처럼- 매섭고 차가운 눈빛 남은 건 뾰족한 입 하나, 지들 호랑이 굴로 들어온 격이라고 속닥댔지만 가만 보니 가는 곳 마다 뾰족한 고 입으로 여우나 호랑이 무찌르고도 남았을 게 뻔, 살쾡이처럼 잔잔한 땅 후벼댔을 게 뻔, 병든 입 입이 무서워 그, 입......

허슬허슬한 여지 끝내 허용치 못하던
애물단지 잎 하날 잘라냈다
겨울 몸싸움을 그쳤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詩作과정에 있어서 시인의 意識내용을 독자가
100% 번역해서 알 수는 없겠으나,
가시돋힌, 입이 쏟아내는 비수匕首 같은 말에
대처하는 시인 나름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에 꽂혀 아프게 자라나는 미움의 싹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는 게 최상책이겠지요.
어쨌던, 한 날카로운 입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건지...
혹여, 나 자신이 그런 못된 입을 지니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축축한 환생 / 오정자

 

봄눈이 왔다
봄눈이 태연히 쏟아졌다

봄눈이 갔다
팻말 하나 꽂고서

소란스런 한 때는
순간에 스러져
그랬지
그림자처럼
그저 기억이
햇살에 어렴풋하듯
사라지는 것들은




________________ 

 

화사한 봄 안에서 시침을 떼면서,
지난 겨울의 축축한 환생으로 내린 봄눈(雪).

마치, 映畵의 반전하는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이미지 기법이네요.

그래요,
아름다운 것들은 한 순간에 불과한지도.

다만, 남겨지는 그림자 같은 추억만
희미한 햇살처럼...





 

 

 

 

희미해지기/ 오정자

원점으로 돌아가야지
누추한 흙에서 비롯된 나
추락이 무서운
어린 새새끼처럼
지워지는 경계와
시끄러운 정체의 틀을 벗고
민들레 홀씨 모습으로
희미하게 낮아져야지

나 이제 스르르
비상의 날개를 접고
무시무시한 낙하를 꿈꾸며
원점으로 돌아가야지
생존의 낭떠러지 밑
저 한없이 낮은 곳
아무것도 뵈지 않는 곳에서
당신 하나로 완성되는
나를 위하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 한없이 낮아진 곳으로
돌아간 나를,
그 희미해진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당신이란)존재.

아, 전 그래서요.

이따금...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답니다.

시인이 꼭이 그런 詩意로 쓴 건 아니겠지만...
어쨌던 저에겐 그 한없이 낮은 바닥에서
지친 영혼을 받아주는, 그 어떤 따뜻한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시를 감상하는 동안만큼은,
시인님의 시가 아니라 제 詩이기에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겠지요?

 

 

S는 안개처럼 사라져도 / 오정자 

쏟아지는 보랏빛 당신이란 기둥은
습속習俗의 단단함보다 몇 곱절 강합니다
쓰러지는 바람 유연한 프로그램에도 긴장하던 당신은
길들여지라 외치던 행인들 곁
비릿한 바닷길 길 아닌 길로 가셨나요
구애求愛 사라진 아침 바다가 된 길로 걸어간 연인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습니다
우아하게 눈 뜨는 섬의 새로운 수면법
낭만은 눈 뜨고 달려드는 고양이
존재를 사르는 싱싱한 에너지입니다
살아있음은 지성知性
떠남은 사라짐이 아니었습니다

꿈 혹 빛으로 가는 통로 여는 일로 공간의 사랑을 느낄 뿐 유인하는 별들을 믿을 수 없나요 애틋하여 아름다운 소원이라면 만물에 믿음 아닌 것 무엇이겠습니까 굳이 성역을 가리키지 않아요 좁은 길만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당신 안에 사는 나의 신神은
함부로 일으킬 수 없는 자존의 힘
목울대 떨며 부스스 아침안개로 태어나더라도
수직의 화살로 소통의 열반에 들리니
경계의 늪 소용없는 땅의 한 구역일 뿐인 세상의
사랑하는 자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인님이 말하는 S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굳이 알 필요도 없겠지요.
사람들에겐 그 누구나 자신만의 그 S가
있을테니까요.

간혹, 종교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데...

그런 종교적 상념의 순간이야말로 삶의 일에 비유가 되는 세계,
즉 넓게보아... 알레고리의 세계와 魂 (인간의 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인간의 목마름이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의 세계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기실, 종교야... 산에 오르는 등산로와도 같은 것.
정상에 오르면 그 모두 한 자리이겠지요.

당신 안에 사는 나의 신神은
함부로 일으킬 수 없는 자존의 힘
목울대 떨며 부스스 아침안개로 태어나더라도
수직의 화살로 소통의 열반에 들리니
경계의 늪 소용없는 땅의 한 구역일 뿐인 세상의
사랑하는 자여,

생각하면,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우습기도 하고...

깊은 시에 생각, 머물다 갑니다.

 

 

니미 C에게 / 오정자

왼편 하늘로 서서히 밀고가는 양떼구름 아래 산의 지평 라인은 하늘 땅 중간 어디에도 갇히지도 흐르지도 흐를수도 없는 눈 안에 요지부동 오후 한 시 삼십 이분 실체와 허구 반쯤에 발 담근 칼라벤자민이 우수 빛 정오 꽃잎에 앉았던 물기는 이슬로 살아있고 달콤했던 소리 망가진 정화조 속을 통과하면 결국 구린내만 난다는 것을 담배연기가 보는 것이다 연기자 많은 무대가 비좁고 훵하고 다정하고 외롭고 결백을 재증명하려는 혼잣말이 울고 불고 그악스럽던 허영을 투명 천으로 가리고 떠난다 잠들 것이다 얼룩진 울분을 버리지 못해 푸념에 젖은 깃털로 비상을 꾸리는 자 손끝 현기증으로 배고픈 시간 정의도 진리의 법정도 표준도 없는 길 찾으리라는 허상도 동경하지 않는 대낮은 밤 등불 없고 막대기만 높고 풀밭엔 부초도 되지 못한 잡풀 무성하여 밟거나 누울 땅 황폐한 흙은 단비를 기다리나 눈물로 위안삼아 촉촉하나 메마르다 말한다 투정부린다 누구의 헛 노래인가

여름 갈매기 끼룩끼룩 끼루루룩 끼리끼리 모인 귀족들만 사는 나라 서로의 머리에 얼굴에 금테 둘러주며 님이여 님 님이여 님 부적합한 인물 그렸다 지웠다 그리워하다 창살없는 감옥에 스스로 만든 수의를 벽에 걸고 미친게지 돌아버리기로 작정한 화사들 공주와 왕들 제 방식 따르지 않는 사람 동물 이단 화형하겠다고 횃불을 들지 기름기둥 된 몽둥이를 사람끼리는 사람이라 부르며 우상의 동굴로 돌아간다 통로 비상구 바닥 상실한 눈빛들 슬프고 빨갛다 파래지는 눈동자 늙은이 한 명이 자기보다 어린 여자들을 꼬드기고 따라오라 하고 실눈 뜨고 따라가는 꼬리들 살았다고 비명지르고 아무도 듣지 않고 홀로 취해 춤 추고 한 아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한 여자 우박처럼 힘찬 줄기 채찍에 맞고 쓰러지고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지 않는다 씨앗 멸종

줄 씨앗이 없다고 우주가 말한다 우주가 우울증으로 웅성댄다 얌전하게 돌아서야지 너무 시끄러워 입 다물 줄 모르는 꽃대들 어젯밤도 돼지고기를 삼키며 흔들렸고 유효기간 정해진 사람들 휴지통이 되어 각자의 휴지를 담고 그러고도 부푼 배 바다에 던지지 못하고 육지를 향해 꾸역꾸역 올라선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 산은 여전히 지평 너와 내가 부재한 우리 빈집에는 다녀간 바람의 발자국 그 그림자들 윤회 깔깔깔 유령 웃음소리 해골 비틀린 입 모양이 욕을 재구성하고 시인으로 인증된 후에도 까마득히 깨어날 죽은 혼들 삐 이 익  부러진 칼에 문이 열리고 페르세포네가 밖을 나와 컵 속에 수레가 굴러간다

뚜 뚜 뚜   뚜 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미 C에게  (니미 氏에게 띄우는 편지인 줄 알았어요 --- 웃음)

솔직히, 저 같은 부족한 안목으로는
시인의 시적 의도가 무언지 잘 짐작이 가지 않네요.
하지만, 거듭해 읽어보니... 막연하나마 오늘의 시대가 담지하고 있는
저 지독한 단절의 덩어리들(그 잘난, 오늘 날의 시인들 포함)에 대한
한 바탕의 시원한 욕지기라는 느낌입니다.
(시제를 '니미 C8에게' 라고 하셔두 될듯)

일찌기 스피어즈(M.K. Spears) 같은 이는
현대의 특성을 '단절'이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죠.

그것은 이 시대에 오면서 모든 사물들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서로 맺고 있던 관계를 상실하고 하나의 독립적 개체가 되어 존재함을 말하며
상호간에 일종의 불연속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는 건데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심지어 나아가
인간과 神의 관계마저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거에요.
(신에 관한 이 부분은 다소, 지나친 비약 같지만)

암튼, 우리들은 이러한 현상을 간략히 '단절에 따른 소외'라고 부르죠.
현대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지독한 단절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을 시인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가로 부터 우리는 시의 의미를 밝힐 수도 있을 거에요.
오늘의 시인님의 시처럼...
표준적인 시어의 흐름을 조각난 말로써 대신하고 전통적인 시구조의 통일성을
부분들의 단층으로 대치하는 면모를 통해서 말이에요.

시인의 깊은 意識 내용까지 제가 세세히 알 바는 없으나,
시인 자신 안에 흐르는 내면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것은 인상적입니다. 

 

----------  2011. 10. 26 감상 2   

 

산문의 형태를 취한 시...

즉 이른바 <산문시>가
散文 , 그 자체와 간단히 구별되는 건 다음과 같다.

산문의 경우는 설명적 진술에서 진술로 끝나는 데 비하여,
산문시는 시인의 시적 의도와 상념을 '이미지'나 '메타포어'로 제시한다는 점.
(그 무슨 새삼스러운 말인가 ? --- 실상, 요즘은 산문시가 아닌
무늬만 산문시인 것들도 엄청 많기에 그렇단 거)

어쨌던, 산문시는 산문과는 달리 연과 연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
시와 시어 사이, 나아가서는 시제와 본문 사이에 응축된 의미까지
추적할 필요도 생기고 이는 산문시를 읽는 즐거움?이기도 한데.

니미 C에게 (니미 氏에게 띄우는 편지인 줄 알았다)

솔직히, 나 같은 낮은 詩眼이라면 一見해서 그렇다는 것.

하지만, 조금 밀도있게 시를 읽어보니...

오늘의 기막힌 이 시대가 담지하고 있는,
저 지독한 단절의 덩어리들 (그 잘난, 오늘 날의 시인들 포함)에
대한 한 바탕의 시원한 질타라는 느낌.

일찌기 스피어즈(M. K. Spears) 같은 이는
現代의 특성을 '단절'이라는 말로 요약한 바도 있다.

그것은 이 시대에 있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서로 맺고 있던 관계를 상실하고, 하나의 독립적 개체가 되어
존재함을 말하며 상호간에 일종의 불연속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심지어 나아가 인간과 神의 관계마저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것.
(인간과 신에 관한 부분은 '스피어즈'의 다소, 지나친 비약 같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이러한 현상을
간략히 일컫자면 '단절에 따른 소외'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오늘 날 현대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지독한 단절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을 시인은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가로 부터
우리는 이 시의 의미를 밝힐 수도 있을 터.

표준적인 시어의 흐름을 조각난 말로써 대신하고,
전통적인 시구조의 통일성을 부분들의 단층으로 대치하는 면모가
참신하고 독특한 느낌이 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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