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 안희선 시인의 짧은 시평]
쓸쓸한 것에 관하여/ 오정자
... 그래, 쓸!
당신 없는 숲이 쓸쓸하듯
잡담으로 끝 날 이야기들 쓸쓸하다
그래서 당신은 가시많은 여자를 좋아했을까
그녀, 여왕장미라 빡빡 우기면 난 달맞이 꽃 할래
나의 경우는 달랐어
스삭스삭 지웠어 지우는 것 뿐
딜레마의 말들은 버렸지
끝없는 절망이 보이면
그것이 인생이다 드라마다 했어, 난
재밌지 오히려
바벨탑 아래 똑같은 사람들을 봐
허영심 많고 드센 우리나라 40대 여자들 인기가 없어요
돈 좀 있는 남자들 우즈베키스탄 여자를 좋아해요
텅 빈 숲 깨끗한 밤하늘에 별이 뜹니다
별, 별, 별 또 별의 별 상처자리
하늘에 꼭꼭 붙어 있어요
누구 것이든 상관 안하죠
광야에 선 나무 한그루, 소녀는 쫄랑쫄랑
발자국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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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것에 관하여' 라고 하셨으나...
흐르는 세월 속에 중년을 살아가는 시인의
넉넉함도 엿보이는 시 한편이네요.
쓸쓸한 삶을 마주하면,
우리들은 습관처럼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그래, 쓸! 하며 경쾌한(?) 탄식 하나
날려보는 것도 괜찮구요.
[쓸쓸함]에다 감각적으로 작가의 意識 - 저항있는,
혹은 흔들리는 자신을 추스리는 -을 솔직하게
부어넣고 있음이 좋습니다.
부적절한 그 무엇 / 오정자
딸꾹
소리낼 때
그때의
복식호흡이 문제지요
아니,
공작새도 마찬가지라구요
꼬리 깃털이 아름답지만
활짝 펼칠 때
온통 드러나는 엉덩이 때문에
가령 락을 부를때나
편안히 누군가를 부르고자 할 때
주룩주룩 지나는 바람
횡격막 긋는
우수수한 낙엽들도 문제입니다
어디 평행봉을 건너볼까요
아랫배 가슴 허벅지 날개
펼칠수록
감추려 할수록
들통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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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건 공작새도 그래요.
꼬리 깃털이 너무 아름답지만...
활짝 펼칠 때, 온통 드러나는 엉덩이 때문에.
하긴, 그 어떤 적절한 행동이던...
반대급부로 따르는 부적절함도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시심에 머물다 갑니다.
오후 잔소리
불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죠
보라색이 어둠 속에서 갈색으로 비칠 때가 있어요
보여지는 色이 다 진정한 색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진실을 가려내듯 외로움이란
다리건너기 어려운 줄다리기입니다
슬픔의 이유요
슬픔마저 대신 해 주길 바라는
어렵게 얻은 남의 즐거움으로
자기 쾌락을 대신하려는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 때문이죠
자신과 타인 그
사이에 있는 건
‘과’ 라는 낱말뿐이 아니라는데
오래된 변명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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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언젠가, 졸시에서 ' 극에 달한 변명' 이란
표현을 한 적 있지만...
그 '과' 라는 것.... 참, 오래된 변명이기도 해요.
문득,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고...
나의 불행은 너의 행복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하긴, 있지도 않은 '사랑'을 끈질기게 말하는...
고집 빼면 시체인 시인들의 무모함 덕에
세상은 더 이상 미치지 않고 힘겹게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붉은 엽서/ 오정자
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만큼 어둠도 깊기에
짧은 팔을 힘껏 벌려 벅찬 하늘을 끌어안아야 하느니
끝까지 공중에 매달려 놓지 말아야 하느니
이에는 색다른 집념이 필요할 것이라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기에
늘 자로 잰 듯이 고집을 부리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켜
그렇게 손에 잡힐 듯 한 거리만큼 떨어져 서는 일
이 또한 극적이라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젖은 옷자락처럼 약간의 슬픔을 머금기도 하며
빨랫줄에 걸린 눈부심이라
큰 기쁨은 빈 뒤뜰로 몰래 찾아오는가 하여
나 홀로 팔 벌려 하늘을 끌어안으려 펄럭펄럭
그렇게 웃으며 바라는 아름다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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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기에
늘 자로 잰 듯이 고집을 부리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켜
그렇게 손에 잡힐 듯 한 거리만큼 떨어져 서는 일 >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이 흔히, 파멸로 치닫게 되는 건
바로 그 거리만큼의 간격이 없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소유물인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삶에서 사랑이 자리하는 일은 점점 더 희미해지기에...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간으로서의
그 거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회색도시/ 오정자
빈 들판이 춤추고
빈 들판이 가만있고
가운데 사물이 흔들리고
외롭지 않아 외롭지 않아 할수록
외로움 깊어지는 마네킹들이
발자국들이
빈 들판 안개에 둘러싸인다
빈 들판 어둠에 가라앉는다
툭툭 털어버릴 것과
털어버릴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이
굴절 사이 언뜻 검은 눈물 보이고
뿌옇다 낮과 밤거리와 나무, 사람, 마른 방(房)
사람이 가장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사람이 그 들판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겨울은 언 땅을 꿈꾸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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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빈 가슴에 오직
한 겨울의 추위만 든든합니다.
때론, 사람들에게서
더 이상 따뜻함을 찾을 수 없을 때
오히려 이 겨울이 사람들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구요.
사람들은 모두 다, 각자가
지독한 북극처럼 차갑게 외롭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회색빛 이외의 그 어떤 색깔도
자기의 빛깔이 되는 걸
거부하지요.
허리를 칭칭 감은 줄기가 / 오정자
불통의 암벽을 그들은 강한 바위라고 불렀다
우리 부부는 맨날 잉꼬처럼 살아, 아암 내가 누군데
앵무새처럼 재잘대는 그의 긍정에
긍정이 강한 부정처럼 자꾸 느껴져
정의 정의 부르짖는 그가 정말 행복할까
의심하던 어느 날, 나는 보았다
아내와 버스를 타고 가다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혼자 살아남은 사내의 고독을
십 년간 폐인처럼 산 한 남자 곁에
행복한 그 남자 빈 컵 같은 결혼 주례문 그러나
행복한 사람 넘치는 세상
그 사내에게 술 한 잔 따르는 이 없더라
그래요 꾸준히 기뻐하세요
그 옆을 무심히 지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누가......?
아직은 무사하다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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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행복이라 믿고 싶은 것들...
그런 속절없는 믿음이
그나마 있어, 희망이 되고
안심이 되는 삶인데.
사실, 진실로 지극히 불행해진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한 때의 견고했던 믿음들이 모두 꿈 속의 빈말 같기만 한데요...
그건 행복에 취한 사람들에겐 하등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의 넋두리이기도 해요.
짧은 꿈 같은 삶이 드리우는, 긴 명암明暗이라 할까.
하지만, 오늘도
행복은 불행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허리에 칭칭 감은 믿음의 줄기를 간직하고
또 다른 행복을 향해 삶의 촉수를 뻗어가지요.
이상한 봄/ 오정자
설핏 잠 깬 해거름에 덜커덩 흔들렸네
어인 한숨 새 나왔네
오르락내리락 체온을 앓고
꽃잎 광란을 춤추고
시린 어깨 전율을 키웠네
생은 사막의 모래바람
쩔렁쩔렁한 방울소리
꿈결에 다녀가는 위안
눈물이 흐르냐고요
미소하나 매달렸지요
무섭도록 고요한 평화
내려다보던 그는 누구였을까
밤이 맞도록 뒹굴던
그를 호명하지 않겠습니다
하늘, 구름, 산, 높은 높은 곳에 그를 두려니
한 발짝씩 오세요
동공과 눈꺼풀 사이로 오세요.
생이 미학에 그칠 수 없어
사랑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사유는 삶! 봄에도 추울 수 있는
생은 혁명의 노래
또, 소란한가요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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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봄이에요.
사람들의 따뜻한 視線이야 있던 없던...
스스로 피어나는 꿈 같은 봄꽃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人間事는 사랑과 이별을 말하며
소란하게 세월을 엮어가지만...
뭐, 봄이야 그런 소란함을 개의치 않겠지요.
그저 봄이 되었기에 스스로 그렇게
자연 속에 봄으로 자리할 뿐.
오히려, 봄의 눈(眼)에 비추이는
우리들의 현란한 삶의 모습에서
봄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알다가도 모를, '이상한 사람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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