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 오정자
커피와 별과 낮
별과 낮에 연거푸 마시는 검은 커피와
자작나무 이야기 그리고 녹색 잎들의 흩날림이 있는
갈색 거리의 실낱같은 희망
화해하지 못한 여자들의 반목했던 사연과
그로인해 스스로 괴로운 꿈길을 걷는 아픔과
그리고 다시 별,
그 별이 마시는 한 잔의 술 혹은 茶
낙엽인가 별인가 까만 커피 알갱이인가가 떨어진다
찻잔이 팽이처럼 빙글대다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주정主情
몇마디, 언어가 그래도 좋다
언어의 강에 흐트러진 너희가 좋다
사람의 가슴 깊은 곳에
詩의 메아리로 앉히는,
茶 한잔, 혹은 술 한잔의
그 미묘한 명령
여인은
언어의 江에
아침처럼 실감나는
언어를 띄워 놓고,
주정主情을 다스리네
보이지 않는 가락이
잃었던 얼굴을 데려 오듯이...
시를 읽고
저두, 따라서... (웃음)
시에서 왜, 감각感覺을 소중히 하는가? 라는
물음을 흔히 만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있어서 감각이란 감각 그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테에마>를 위한 감각이겠지요.
즉, 테에마(主題)가 될 수 있는 요소要素가 감각 속에
용해溶解되어 나타난다는 점이죠.
그때, 詩의 뻔쩍거림 - 경이로운 美 - 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가을엔 그대여 / 오정자
당신과 엮이어
수천의 빛을 내고
수만의 언어를 펼치는 이 가을엔
손깍지 애무를 걸어봅니다
따갑게 익어가는 소리 들어보라
가로수 연인들 말하고
찬바람이 알려준 가을
집안에서도 노래합니다
물가의 나무처럼 그대
쓸쓸한 날에도 날 지켜주세요
그대 떠나면 나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사랑하고도 침묵했던 나 떠나신다면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한해만 더 용서하세요
그대가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의지가지없는 낙엽위로
함께 걸어요
속살거려요
2005,
<칼라 보노프>의 Water is wide...
학창 시절에 AFKN(미군방송)에서 첨 듣고,
앨범을 구하려고 명동 일대 레코드 가게를
이 잡듯 뒤졌던 기억이... (웃음)
후렴에 따라 붙는, <제임스 테일러>의
듀엣 백back코러스도 넘 좋구.
물가의 나무처럼 그대
쓸쓸한 날에도 날 지켜주세요
그대 떠나면 나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하는데...
떠나갈 사람 있을까요.
그대가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한해만 더 용서해서,
이 가을에 만큼은
떠나지 말아달라는데.
근데요,
사랑하고도 침묵 하는 거...
넘 오래 하진 마시길요.
기다리던 사랑두 지칠 때가 있으니까요.(웃음)
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는
프랑시스 잠 Francis Jammes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시인이죠.
저두 좋아하는 시인인데,
그의 시편들 중에서 '열등생'이란 시가 기억에 남아요.
'불행의 칠판 위에 그는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라는
마지막 結句가 특히...
劣等生 / 자끄 프레베르
그는 머리를 흔들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으로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겐 그렇다고 한다
그는 先生님에겐 아니라고 한다
그는 서 있다
그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출제되었다
갑자기 그는 미칠 듯한 웃음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린다
숫자와 낱말을
日子와 이름을
文章과 함정을
그리곤 선생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상스러운 애들의 고함 소리 속에
가지가지 빛깔의 백묵을 들고
不幸의 칠판 위에
그는 幸福의 얼굴을 그린다
너 / 오정자
사방사십리 둘레의 큰 산에
삼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가
치맛자락을 끌어
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 동안
우주 모든 땅을 가루로 빻아
일천국도를 지날 때마다
한 알갱이씩 떨어 뜨려
가루가 다 없어지는 동안
타지 않는 혀로
겁(怯)없는 메타포로
만나고 싶은,
견고한 기다림을 뚫고,
가슴에 부딪는 그리움의 빛을 따라
도착한 곳.
너...
그에게도 이 소리가 들릴까요?
잠들지 못하고,
밤새 詩 위에서 흔들렸던
붉은 심장의 소리를...
평범한 꽃의 언어 / 오정자
그들이 특별하다
그들이 평범하다
그들이 모든 별을 밟고 다닌다
그들이 춤을 춘다
그들이 말을 한다
특별하려다 평범해진 그들이
자기의 우주 안에서 우는지 웃는지
모르겠다 나는 도무지
알아듣질 못하겠다 그러니
꽃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저 꽃들이 왜 피어나는가를
저 꽃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왜 그들 아닌 그대에게만
말하고 있는가를
굳이, 시인들이 <꽃의 언어>로써
갈구하는 거라면 그런 것 아니겠어요.
구사하는 모든 언어가 日常的 한계선을 돌파하려는
(정신의) 지고점至高點을 향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전, 그런 면에서 시인들은 절대루 평범하면
안 된다고 보는데요.
그래야, 꽃들의 불가시적不可視的인 (그니까...현실밖의)
또 다른 현실의 꽃도 보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지요.
하긴, 요 위에 분이 말한 거 처럼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특별나니까...
오히려, 평범해지는 게 무지 힘든 일이므로
<평범한 꽃의 언어>가 特別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순간을 걸어가다
-달마대사의 선화를 읽고
습관이다 오전 아홉시 십육 분 시계와 함께 흘러가거나 남아 문둥이 같은 시를 읽거나
무심히 불붙이다 필터 태우는 일처럼 내 시는 한 번뿐일 연습 게발선인장 미친년처럼
꽃 봉우리 솟구친 날 계절 잊은 나도 벽 속에 답안지를 발기발기 찢는다 답 없는 삶
방편일 뿐인 스파링 파트너가 아름답다 폭력과 무폭력의 차이
야윈 시의 향기
시가 절대고독을 말할 때
엣지(edge)있다 했다 그러나
그 말 속 각들은 지운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데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무성한데
영화감독 말이지만 달마가 동쪽으로 갔는데
동쪽으로 간 달마 달 색깔도 모르는 여자가
면벽한지 오랜 얼굴 돌아앉게 했다면
가정假定이 아니라 행동
오른쪽 팔 자르고 머리통 보존한 혜가에게 달마 가라사대 그대야말로 진정 나의 사람이다 머리는 자를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야 하니까 나도 한 때 몸 던졌던 기억이 있다 용산역 비행소녀 지금 왜 내 안으로 걸어오고 있나 경쾌한 발소리 따라 시계가 움직인다.
2009. 11. 24
일찌기, <에드가 알란 포>는 그의 저서 유레카Eureka에서...
" 산정山頂에서 주위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 풍경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놀라지만, 視線을 일회전하지 않는 한
그 장면의 全一的인 파노라마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山頂에서의 일회전을 생각해 본 사람이
좀처럼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조감의 완전한 단일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 라고
말했던가요.
어쩌면... 이 一回轉의 정신, 그 조감의 단일성이야말로
<절대현실>과 <정신해방>을 찾는 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결국 매 순간 걸어가며 그렇게 일회전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일이 관건일 거에요.
그래서, 달마두 동쪽으로 걸어갔던 게지요.
삭혀지다
안개 자욱한 어두움 |
삶이란 게 푸른 희망만 뜯어먹고
사는 일은 아니어서...
때론, 절망에 가까운 회한悔恨에
빠지기도 합니다.
좀 더 단단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사랑이 그렇고...
미래의 기억에 대비하지 못했던,
안이했던 삶의 후회도 그렇구요.
어쨌던,
시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삶이란 그렇게 삭혀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푸른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보다 항상 먼저 앞서 간 꿈(혹은, 당신)의
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이에요.
비틀즈, 천국을 지우며
수사슴 요정 별 사랑,
위험한 동물 붙좇는 것마다
열띠게 추구하는 것마다
달콤하다, 그 시절에 설탕을 뿌려놓은 듯
귀에 딱지 앉도록 듣는 당신의 학설
당신이 원하는 행복 그 부재의 이중구조에 대하여
가벼운 발작에 대하여 사라져가는 찰라 전 과거와
빛나는 현재를 비교할 때처럼 순간에만 존재하는
행복에 대하여 온당치 않은 기원 자주 듣는 우리가
권태로운 행복이 사람을 얼마나 게으르고
메마르게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행복은 기분 좋은 떨림 간발의 차이로
달아나기도 하거니, 행복을 위해 행복한 기억만
편애해야지 하면서도 세월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날갯짓 여전히 얄궂은 당신을 노래한다
2007,
저 개인적으론, 비틀즈의 멤버 중에서
<존 레논>이 제일 음악성音樂性이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그의 노래 [Imagine]은
그 어떤 삶의 철학까지 느끼게 해 주구요.
(근데, 그가 그의 죽음을 예견해서 Imagine을
노래 했는지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어쨌던, 그도 지상에서의 천국 같은 걸
상상(Imagine)했겠지요.
결국, 그건 접혀지는(혹은 지워지는) 천국이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걸 알면서도.
권태로운 행복도 있는 반면에,
권태로운 불행도 있겠지요.
어디까지나,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인만큼.
生의 한 가운데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듯이.
불꽃
호수를 비취이던 불꽃 |
모세가 엄청난 신비와 총명의 경지를 보여준 사람이라면,
베드로는 엄청난 평범함과 우직함을 보여준 사람이었죠.
하지만 둘 다, 그의 전 생애와 전 存在를 하늘의 主께
의탁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간직했던 영혼의 불꽃은
동등한 것 같습니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그들이 견지했던 그 불꽃 같은 삶의 정신은
오늘을 휘청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 같군요.
詩意에서 다소 빗나간 말씀이 되었지만,
<불꽃>이란 것에서 생각나는 바 있어서...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내가 코를 고는지 나는 잘 모른다
(가끔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도 하지만)
아침에 깨어나 옆 사람이 말해야 안다
남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는 나의 일부분
간극의 수치(數値) 란
이미지와 실제의 틈새
사과 맛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접촉 그 사이
무수하고 무질서한
우리는
어떠한 한 순간에 더더욱
서로를 말하지 않는
우리는
<사과>라고 느껴주는 실체적 감각의 존재가 없다면,
사과 혼자 제 아무리 자기가 <사과>라고 외쳐도
그건 결코 Apple로서 존재하진 못할 거에요.
그건 이미, 김춘수 시인이 그의 <꽃>에서
불러주는 존재로서의 <의미획득>을
갈파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보면,
삶에 있어 모든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곁을 스치며 길을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