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별의 소식

미송 2009. 1. 24. 14:37

 

별의 소식


1.

늦은 저녁 찬란한 빛의 별을 보았습니다. 어둑해진 길을 걷다 우연히 올려다 본 별들이 어떤 빛보다 황홀합니다. 콧속에 물컹한 내음. 나는 제법 시골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돌아가면 자연스레 생긴 길이 있고, 꾸부정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경스러움은 한 번 박히면 쉬 떠나지 않는 자극성 없는 율동입니다. 시골길에서 만나게 된 별들로 나는 아찔했습니다. 간지러운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요. 밤하늘이 때로는 태양보다 환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과 별 이야기를 했습니다. 질량을 따질 때 흔히 별의 숫자만큼 별의 광채만큼 별의 온도 만큼이라는 답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우리, 하늘 땅 땅 하늘만큼 쌓아도 모자란 것이 있어 다 안길 수 없는 사람들끼리는, 별들의 수군거림을 뒷전으로 흘리며 웃곤 합니다. 그래요. 제 안에 두고서도 그리운 것은 아버지의 하늘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쉼터가 있고 처녀 가슴처럼 설레이게 하는 하늘이 있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길을 따라 곡예를 벌이는 청설모 다람쥐 볼록한 참새들, 그들에게 단물이 되어 주었을 생명의 환희. 분칠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한 꺼풀 가린 마음이 그립습니다. 세수하지 않고도 말끔해진 새벽 나팔꽃 같은. 그러나 그러한 마음도 머물 수 없는 떠돌이 별이라서 욕심마저 버려야겠지요. 눈이 부셔도 화려하지는 않은 별. 소리 내지 않고도 환한 웃음을 선사하는 별. 이렇게 저항 할 수 없는 것들이란 한 점 그림자도 없이 가까이 오는 듯합니다.

 

근시 거리에 든 별들이 여자의 마음을 흔든 까닭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별들도 결혼을 하고 전쟁을 하고 죽음을 맞이할까요. 평화의 전갈을 들고 은하수 길을 달리던 신하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쓰다듬으며 지켜주던 목동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직한 어깨가 필요합니다. 알퐁스도데의 스테파네트처럼 저는 지금 졸고 있습니다. 오리온 북두칠성 마글론의 전설을 알고 있지만 당신이 가장 오래된 나의 전설이며 별이라는 고백을 슬며시 감춘 채, 중력이 당기는 곳으로 기울어지고 있어요. 


 

2.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니, 사랑이란 말이 좀 유치스럽나요. 그렇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까요. 그는 바닷가에 앉았을 때 밤하늘에 별이 없으면 허전해 합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뭔가 빠진 듯, 그래서 제 이빨 어딘가가 엉성해진 느낌인가 봅니다. 찡긋하던 그의 미간이 환해지는 순간 그는 손가락으로 파도자락을 가리키며 “아아, 저거야 별들이 밀려오고 있어”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별이 백사장 위로 자꾸 밀려듭니다. 모래톱을 성큼 올라 밟은 별들이 바글바글한 거품으로 터져나가 지금 경포 앞바다는 우주 쇼가 한창입니다.

 

사실 그는 대낮에도 별에 취해있습니다. 햇볕 쨍쨍한 날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하늘에 별이 보이냐고 묻습니다. 물론 처음엔 안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별은 낮에도 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햇볕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정말인가 하여 별에 관한 책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의 말이 맞더군요. 별은 지구 전체를 감싸 안고 늘 우리 머리위에 떠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신화의 눈입니다. 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자신이 하나의 신화인 줄, 하나의 별인 줄 알게 된다는. 그래서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 가장 현실적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데아의 세계라는 말이 있지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기독교 신학의 로고스 세계로 연장되었고 그 로고스가 근대 이성이란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정신세계에 대한 관념일 뿐인데, 잘난 철학자나 신학자들은 이것이 곧 현실이라고 하더군요.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피부 접촉을 통해 느끼는 모든 감각이 나의 현실인데, 그들은 이것을 환상이라 허상이라 말합니다. 생각을 좀 더 연장시키자면 현실적 이 현실적이란 말이 가끔 모호합니다.

 

손금을 따라 그려진 당신의 북두칠성을 봅니다. 어느 날 방안 가득한 별을 발견했습니다. 구석구석 자리를 펴고 누운 별을 보았을 때, 발아래 밟히는 별을 사뿐히 건너 이불장에도 화장실에도 감자 창고에도 별이 빛나고 있을까 둘러보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찾았던 사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없지만 주고받던 그 손길 따스한 감촉, 이것이 허상이거나 환상일까요. 먼 세월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이렇게 손에 잡히는데 말입니다.

 

2008-11-08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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