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금강경 '즉각 마음 비움의 상태로 살아라'

미송 2023. 3. 17. 13:08

 

 

 

즉각 마음 비움의 상태로 살아라

 

금강경을 읽다 보면 같은 문장 구조가 되풀이됩니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흐름이 되풀이되는 분별의 연속이므로 이러한 구조화된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배려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화된 의식의 흐름을 깨기 위해서 즉각 마음 비움의 상태로 살아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조화된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금강경에서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말은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라 빈 마음의 반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이 자기 열림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 마음은 어떤 때는 이렇게 어떤 때는 저렇게 끊임없이 일정한 모양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때로는 긍정으로 때로는 부정으로 때로는 긍정과 부정을 다 넘어서 우리의 구조화된 의식을 깨뜨립니다. 그러한 의식이 깨지면 우리의 삶이 온전히 열리게 됩니다. 구조화된 의식 일반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금강의 지혜로 그 구조를 깨뜨리는 것이 금강경입니다.

 

이 경은 저 내면 깊은 곳, 즉 말을 떠난 곳에서 일어나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식 일반인 구조화된 분별로써 금강경을 알려고 하면 그 순간 금강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순간순간 금강경이 살아 있는 말로 뛰쳐나와야만 비로서 금강경입니다.

 

 

자기 한정을 떠나 듣다

 

우리는 보통 의의 자기 규정으로써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지금 하는 말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계속 물으십니다. 이것은 너는 너의 한정을 벗어나 내 소리를 듣느냐 아니면 너의 한정으로 내 소리를 듣느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바꾸어 발하면 사지 곧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로 내 소리를 듣느냐 아니면 자기 한정으로 너의 소리를 듣느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 저는 한정을 넘어서 사지의 맛을 본 사람입니다 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의운하에 실려 있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래께서 과거의 연등불이 계시던 곳에 있을 때 라는 말을 듣고 자기 한정으로 지금과 상대한 과거를 떠올리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실 때에는 중생이 이해할 수 있게끔 비교 한정어를 쓰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구조화된 한정을 떠난 사지四智에서 말씀하심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일깨우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지에서는 과거가 과거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살아납니다. 과거의 연등불이 지금 살아납니다. 과거라는 말을 옛날 어떤 시대의 과거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를 통해서 연등불을 만났으며, 그 만남의 마음은 과거도 미래도 떠난 열림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의 자기 한계에 의해 세워진 시간의 개념을 벗어났기 때문에, 옛날에 연등불의 처소에 있을 때 근본적으로 얻을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얻을 만한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방세계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시는데 연등불은 어떤 부처님이겠습니까?

 

반야경에서 말하는 밝게 빛나는 마음이란 마음이 스스로 밝게 빛나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에 의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등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 밝게 빛나는 마음이 바로 연등불이 됩니다. 깨달음 자체가 네 가지 지혜가 갖추어진 밝에 빛나는 마음인 것입니다.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얻을 바도 없고 줄 바도 없는 깨달음 속에 늘 있다는 말입니다. 늘 깨달음으로 있는 삶이기 때문에 과거라는 말을 썼지만 과거는 바로 밝게 빛나는 마음의 현재 표현인 것입니다.

 

 

서로 잘 살게 하는 기운, 청정심

 

수보리야 모든 보살들은 반드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야만 한다. 형태에 한정되거나 소리나 법등에 한정되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한정을 떠나서 살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 청정한 마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청정은 성스럽고 아름답고 착함을 말합니다. 금강경에서 성스럽고 아름답고 착함이란 구조화된 마음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성스러움이란 의의 한정을 벗어난 마음이고 아름다움은 의의 한정을 벗어나서 드러난 장엄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사는 가운데 흐르는 자비의 빛이 성입니다. 열린 마음에서 함께 나투는 모습 가운데 서로를 잘 살게 하는 기운이 청정심입니다.

 

이미 자기 한계를 떠났기 때문에 청정심에는 대상으로서의 색이 없습니다. 눈의 대상으로서 색이나 분별된 몸은 사라집니다. 마음과 몸을 나누어서 분별하는 분별심이 없습니다. 색에도 얽매이지 않고 소리와 법 등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청정심입니다. 반드시 어디에도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써야한다 란 자기 한정인 의의 작용이 일시에 쉬는 것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께서는 이 부분을 듣고 곧바로 분별의식인 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즉비卽非의 돈오입니다. 모든 행동과 마음 씀씀이에서 그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과 대상을 나누지 않는 하나 됨 속에 청정심이 살아 있어서 앎(깨어 있음)은 계속되나 분별은 없습니다. 앎이 나의 앎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하지만, 여기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의식의 특별한 능력을 깨달음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것은 무심無心 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 사고인 분별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무심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마음의 특별한 능력을 키우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분별의식인 의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보편적인 의식 상태에서는 경험되지 않는 것들이 선정을 통해서 일어나는데 이것 역시 무심이 아닌 이상 의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예를 들어 뛰어난 것을 보거나 듣거나 맛보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마음이 특별한 상태로 고양된 것일 뿐 무심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능력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 됨으로 사는 분이야말로 참된 도에 든 분입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으면서 무심으로 사는 분도 계셨지만 능력이 있는 것이 꼭 반드시 어디에도 얽매인 바 없이 마음을 쓰는 무심의 삶은 아닙니다.

 

 

금강경(도서출판 법공야) pp176-182 타이핑 채란  20180627-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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