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백석

미송 2024. 6. 12. 11:14

 

나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

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

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맨천 사방의 평북방언.

오력 오장과 육부라는 뜻으로 온몸을 이르는 말.

성주님 가옥의 안전을 다스리는 신. 상동신이라고도 한다.

조양님 부엌을 주관하는 신.

데석님 집안 사람들의 수명과 곳간의 모든 곡식을 주관하는 신.

모통이 모퉁이의 평북 방언.

굴통 굴뚝의 방언(평안, 함남, 황해)

굴대장군 키가 크고 몸이 굵으며 살갗이 검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여기서는 굴뚝을 주관하는 신을 말한다.

얼혼이 나서 얼과 혼이 나가서.

곱새녕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은 지붕. 곱새는 용마름의 평북방언. 녕은 지붕의 평북 방언.

털능구신 주로 집의 뒤꼍에 있는 울 안쪽에 자리하는 터주신.

연자망구신 연자간의 연자매를 다스리는 귀신.

디겁 질겁.

화리서리 활개를 치며 다니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짐작된다.

 

 

'9라는 숫자 9라는 단어 '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빨려 들어감 한 갈래로 모으면 구멍 뚫림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개 출입구는 동일함 신인동형설로 태어났으나 푯말 즐비함 영원히 잠만 잘지도 모름 안개에 휩쓸린 입 노래하면 물방울 생김 그 물방울 하늘에 닿으면 아이들 우르르 쏟아짐 아이들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을 때 관념의 덫에서 새어나오는 괴이한 웃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