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애란,「호텔 니약 따」중에서

미송 2024. 6. 22. 11:43

 

 

은지는 엠피스리플레이어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찾아 재생 단추를 누른 뒤 불을 껐다. 은지는 새우잠을 자듯 모로 누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곡을 경청했다. 그러곤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은지가 굳이 이 곡을 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윤이 이 음악을 좋아한단 사실을 알아서였다.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멀뚱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먼저 입을 뗀 것은 서윤이었다. 서윤은 무슨 암호 같은 말을 조그맣게 내뱉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은지가 베개에서 머리를 들었다.
"?"
"백석 시잖아. 아내도 없고 집도 없고 한 상황에 무슨 목수네 헛간에 들어와서 천장 보고 웅얼거리는……"
"난 또…… 근데?"
"이게 신의주 어디 박시봉 씨네 주소를 그대로 적은 거잖아?"
"그렇지."
"고등학교 때 그 설명을 듣는데 그게 좀 먹먹하게 다가오더라고. 제목이 주소라는 게."
"……"
"뭐라더라, 시적 화자니 주제니 이런 건 모르겠고, 그냥 이 시를 떠올리면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힌 한 남자가 생각나.

자기가 누워 있는 초라한 장소의 주소를 반복해서 중얼대는 사내가."
"……"
"그리고 낯선 데서 자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주소지를 따라 부르게 돼.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하고."
"?"
"몰라. 궁금해서 자꾸 웅얼거리게 되는가 봐. 따라 하다 봄 쓸쓸하니 편안해지기도 하고."
"너는 과연······"
은지가 짓궂게 놀려댔다.
"국문학도로구나."

 

 

작가_ 김애란 소설가.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달려라, 아비침이 고인다』『비행운』≪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인생등이 있음.

 

 

먼 곳으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가장 좋은 친구랑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친구랑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헤어질 수도 없고 함께 있자니 괴롭고 참 난감합니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십대 처녀 두 명이 충동적으로 동남아여행을 가는데 조금씩 부딪히다가 결국 한바탕 하게 된다는 설정이죠.
싸움도 싸움이지만 낯선 곳에서 각자 두 사람이 어떻게 그 장소를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풍경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낯선 방에 누웠을 때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라고 읊조리면서 1930년대의 백석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보는 것, 괜찮지 않겠어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인생 제반사가 그렇겠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누구와 함께 떠나느냐 가 최고의 조건이겠죠. 외국 젊은이들 중에는 배낭족이 많다고 합니다그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여자나 남자와 곧잘 연인이 되기도 한다는데. 마음에 드는 장소에 짐을 풀고 아예 결혼도 한다는데.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에겐 엄청난 모험으로 느껴집니다. 여행길에서 도반이나 연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가끔은 싸울 수도 있겠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과는 여행이 즐거울 것입니다.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일과 힘빼고 있어도 되는 일이 있죠.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죠. <>      

 

20131111-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