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경주 <바늘의 무렵>

미송 2022. 11. 10. 13:30

 

 

 

 

바늘을 삼킨 자는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흘러 다니는 바

늘을 느끼면서 죽는다고 하는데

한밤에 가지고 놀다가 이불솜으로 들어가 버린 얇은 바

늘의 근황 같은 것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끝내 이불 속으로 흘러간 바늘을 찾지 못한 채 가족은

그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그 이불을 하나씩 떠나면서 다른 이불 안에 흘러 있는

무렵이 되었다 이불 안으로 꼬옥 들어간 바늘처럼 누워 있다고,

가족에게 근황 같은 것도 이야기하고 싶은 때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그 바늘을 아무도 찾지 못했다 생각하면 입이

안 떨어지는 가혹이 있다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알게 되면, 사인(死因)을 찾

아내지 못하도록 궁녀들은 바늘을 삼키고 죽어야 했다는

옛 서적을 뒤적거리며

 

한 개의 문(門)에서 바늘로 흘러와 이불만 옮기고 살고

있는 생을, 한 개의 문(文)에서 나온 사인과 혼동하지 않기

로 한다

 

이불 속에서 누군가 손을 꼭 쥐어 줄 때는 그게 누구의

손이라도 눈물이 난다 하나의 이불로만 일생을 살고 있는

삶으로 기꺼이 범람하는 바늘들의 곡선을 예우한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민음사> 中

 

 

바늘을 잃어버렸다 대신 나를 잃어버렸다 라고 쓰자, 그 동안의 문장들이 지워진다. 바늘을 최초로 잃었던 적은 언제일까. 잃어버린 사실은 언제 알게 되었을까.

 

“한 개의 문(門)에서 바늘로 흘러와 이불만 옮기고 살고 있는 생을, 한 개의 문(文)에서 나온 사인과 혼동하지 않기로 한다.”

알쏭달쏭한 문장이다. 시에게 정답을 요구할 순 없기에 문장 대신 인생이라 쓴다.

 

다시 읽고 그러다 먼훗날 다시 쓰다보면 , 바늘과 나를 찾게 될까. 정답만을 요구할 수 없는 삶.  삶 대신 넣을 말을 찾는다. <오>

 

20181217-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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