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outback

미송 2021. 2. 15. 13:52

 

 

114 오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곳만이 오지가 아니다. 청정무공해 영역일 것 같은 심연만이 오지가 아니다. 젊은 날 그토록 찾던 오지는 여기. 고도를 기다리던 그때 그 자리가 아닌 이곳. 언어가 훼파된 자리. 공동체라는 미명은 유토피아였고, 소통이라는 도구는 동상이몽의 칼부림이었다. 고양이는 야옹하고 강아지는 멍멍한다. 소는 음매하고 쥐새끼는 찍찍거린다. 현존은 언제나 오지.

 

 

119일 껌

무엇이 문제인가. 엄마가 22살에 날 낳았으니 내가 좀 더 이해를 해드려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아. 30대 아들은 말한다. 썩 괜찮은 문장이다. 흡족해서 내가 너 나이 때는 말이야 하며 나의 삼십대를 들먹거린다. 꼰대의 경계선에 선 나는 과연 투명하였고 투명하고 투명할 것인가, 질겅대는 말이 껌 같다. 

 

 

115일 무늬들

호박에 밑줄 긋는다고 수박되는 것 아니다. 상처와 무늬는 엄연히 차원부터가 다르다. 못난 것은 못난 것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 그러나 호박과 수박의 미적 차이는 얼마일까, 따져본다. 상처와 무늬도 마찬가지.

 

상처를 가진 인간에게는 시간이라는 약이 있다. 그러니 상처도 무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윤곽을 그리는 손길에 따라 무늬로도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예쁘게 문신을 그리던 추억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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