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월정사 다녀오는 길

미송 2022. 1. 5. 18:52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그만 유골함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한 한 줌 뼛가루가 되었다

 

생사일여를 논하던 우리는 유언을 나누었다

 

나 죽었을 때 진정으로 울어 줄 한 사람 있으면 족한 것이니

여기저기 연락하여 장례식장에 앉혀놓지 말 것

 

24시간이 지나야 습기가 마른다 하니

조용히 시신을 안치하고서 집으로 돌아가 편히 잘 것

 

이튿째 날 다시 와 비싼 베옷도 말고 평소 즐겨 입던 옷을 입히고

평소 쓰던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곧바로 화장할 것

 

유골함을 들고 코스모스 밭을 찾아가 사이사이에 뿌릴 것

한 줌 한 줌 뿌리는 일이 그리 길지도 어렵지도 않으니 웃으며 뿌려 줄 것

가을 날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만나면 나의 손인사인 줄 알 것

 

하늘로 먼저 가 기다릴 터이니 훌훌 털고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것

하늘나라에 왔을 때 알아보지 못할까 염려하지 말 것

그 곳에서도 호시탐탐 내려다보고 있으니 바람을 피웠을 경우

양 뺨이 빨개질 만큼만 따지다가 손잡고 걸어갈 것

 

다음 생에는 좀 더 똑똑하고 강건한 사람으로 태어나

어려운 일들을 스스로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깊은 산속 수도승으로 살고

당신은 그 수도승을 곱게 봉양하는 보살로 살면서

치열한 수행으로 한 평생 공덕을 쌓다가

나 죽을 때 그 공덕 다 얹어주고 갈 터이니

 

적멸에 든 우리 이 땅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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