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빗소리 듣는 밤

미송 2022. 10. 30. 14:18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가 말라붙은 눈시울을 적신다. 빗물들이 곤두박질치며 땅 속 깊숙이 꽂힌다. 어차피 좀 울어야 할 판국이었는데 잘 됐다. 눈물이 친구를 만난 셈. 과년한 처녀가 오밤중에 엉엉 울면 한이 맺혀 운다 할 것이고, 드라이한 여자가 울음을 그칠 수 없어 한다면 어인 청승이냐 비웃을지 모르니 소리 없이 내리는 비 보다야 천둥 변죽 울리는 비가 참말로 좋다.

 

 

 

제 이름 자랑치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 모두가 은총이다.

 

햇볕에 든 보드라운 공기, 어둠 속 별빛 그리고 비. 비. 비. 겨울비 내린 어제가 사라지고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천둥소리에 실려 온 계절의 서곡이 공포를 떨쳐준다. 울고 싶은 이를 다시 울린다. 소리와 소리로 이어지는 밤의 정적, 고요만큼 따사로운 위안도 없겠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포옹과 결고운 숨소리,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누가 이 밤도 불면의 찻잔을 기울이는가. 무슨 이야기 주워 담으려 바짓가랑이 걷고 까만 밤 강물을 걸어오는가. 아 아, 하늘이시여 떠내려가지 않을 만큼만 비 내려주오. 내 님 건널 수 있을 만큼의 간격만 덜어내 주오. 메마른 땅 위에 홀로 서 희망 잃지 않도록 눈 감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웃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오. 지금 울어도 영원히 우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주오.

 

송홧가루를 쓸어내리는 장맛비보다 첼로 음으로 징징 울리는 빗소리가 좋다. 반질반질한 낯짝을 다 들레고 따라 울 수 있으니 편안하다. 감겨드는 빗소리를 들으며 강물에 갇히고 눈물에 안기니 아가의 미소처럼 맑아진다. 무엇인들 이 땅에 거저 왔다가 거저 돌아가는 것 있으랴. 가끔은 멈출 수 없는 강물에 물기둥으로 투신하기도 하니 허물 많은 과오들 빗물에 다 씻길 수 있으면 좋으리. 투명해져 더 오색찬란할 무지개에 빠질 수 있으면 좋으리.

 

 

20070304-20221030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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