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분주하지 말기

미송 2025. 12. 14. 12:53

 

느림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지 않는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계획에 휘둘리지 않고,
명예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과제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계획한 과제의 종착역에 빨리 도착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 이제 이런 맹세를 해보자.
살짝 스치기만 할 뿐, 움켜잡지는 않겠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때로는 빠른 걸음으로, 때로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넌지시 우리에게 털어놓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전쟁을 겪었다.
그때 ‘박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히 알 수 있었다.
심한 장난을 쳤다는 벌로 달콤한 디저트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꼭 필요한 빵과 우유와 고기를 빼앗기고,
전기와 자유까지 빼앗기는 일이었다.

독일군이 돌아가고 나자, 한동안 먹을 것만 보면 아귀 귀신이 씌인 듯 덤벼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시네 클럽 가입이 유행이었다.
돈이 없어도 우리는 영화를 실컷 보고,
영화에 대한 비평적 분석도 서슴지 않았다.
때로 토론이 과격해지면 전투를 방불케 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길다란 바게트를 거의 통째로 삼키듯 먹는 버릇이 있었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촌사람이었던 나는 파리로 올라와 공부를 계속했다.
유명한 이름들을 꿰어 만든 구슬 목걸이처럼
전철역을 이어 만든 노선들을 수없이 바꿔 타며
몇 시간씩 파리를 돌아다녔다.

나는 파리의 지도를 펴 들고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파리 사람처럼 태연하게 행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무 개가 넘는 구역을
한 손바닥 안에,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안다고 하는 것이 내 무지를 줄여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곧 내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다.
파리의 그늘진 지대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파리는 어두워졌다.

나는 도시나 구역의 우표만 보고도 어느 도시, 어느 구역인지 구분했고,
목소리 억양만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림자만으로 나무를 알아내는 섬세함을 갖게 되었다.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사람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결국 나를 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살금살금 걷는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공원을 떠날 때도 발끝을 세우는 겸손한 사람들.
그들은 삶을 떠날 때도 살금살금 떠난다.

그들이 조용히 눈을 내리감는 까닭은
조심성 때문도, 두려움 때문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뚫어보는
무례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정면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언제나
어떤 뻔뻔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책이고, 이제부터는 나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12:02였다.
몇 분이나 타이핑을 했을까.
무엇을 얻으려 누르스름한 책을 펼쳤을까.

피에르 쌍소가 프랑스 사람일 거라는 짐작.
이름을 발음하며 짐작했을 뿐,
앞장이든 뒷장이든 더 열지는 않았다.
그저 타이핑 순간의 손끝 느낌 뿐,
작가의 의도 같은 것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낮 동안 겪은 일들을 정리하고 싶었고
분주해진 마음을 청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분주하지 말기 라는 제목에 눈을 맞추고
그저 따라 썼을지도 모른다.

밑도 끝도 없는 활자 나열 같지만
한 문장인 듯한 문장들을
투닥투닥 두드리며
마음을 도닥였다.

눈먼 사람의 손을 잡고 걷듯
타이핑을 이어갔다.

책의 한 페이지가
낮 동안 두서없는 말을 달고 살던 사람들과
닮아 있었을까.

낮 동안에 쌓인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말의 난동을 반사해 본 것이니,

 

이만.

 

 

20240227-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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