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gravity

미송 2026. 2. 14. 23:03

 

1

항아리 속 세 마리 금붕어
쉬지 않고 물살을 그린다
번쩍—후레쉬에 반사되는 금빛 얼룩
강한 몸색 출렁이는 꼬리짓
기억 속 요동과 율동이 뒤섞여
한 컷에 담기엔 너무 많은 순간들
저것들!

 

 

2

물고기 노니는 자리 지나
담장 옆 코끝 스치는 진한 향기
멈칫

이름이 뭐니
말하지 않아
은목서
라일락
시에서 얼핏 본 이름
떠올려본다

꽃들은 말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걸랑요
유별난 꽃
유별난 향기
너도.

 

 

3

미안하다
너희들을 작은 기계 안에 담아둬서

그리고 또
내 검은 마음으로
네 흰 얼굴을 잠시 어룽지게 해서

오늘은 솔직히
충혈된 너의 눈빛이 좀 무서웠거든

귓가에 속삭였지만
비명처럼 피곤하게 들리던
전시상품 설명
사람들은 그렇단다, 그렇게 산단다

그래서 화장을 해도
늘 들뜨기 일쑤지

귀여운 아가처럼
발아래 여기저기 알짱대는 너

사람들은 너를
마가렛트 꽃이라 부르더군
이름의 의미까진 찾지 않을래
눈빛이면 족하니.

 

 

4

하나, 둘, 셋, 휴—
들숨 날숨을 의식하며 걸어본다

지구의 중력 gravity에 감사하지
너희도 뿌리라는 발로
저 깊은 곳 중력을 느끼니

믿음직한 꽃잎의 자세를 보면
함께 걷고 싶어진다

요즘 새로 생긴 습관
경행 經行
그런 걸음걸이로.

 

 

금붕어 출렁이고, 꽃향기 코끝을 스치고, 마가렛트 눈빛에 놀라며, 발밑 땅을 밟던 순간까지, 그때 나는 산만하고 기웃거리고, 떠벌이 낙서정신으로 모든 것을 글로 쏟아냈다. 감각이 튀어 오르던 그 순간들.  즈 뗌므 (Je t’aime ) 아이시떼이루 (愛してるAishiteru!) 미 아마스 빈 (Te amo bien), 그 반짝이던 것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 20120503-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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