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를 끊어 구르는 두개골로 축구를 하며 나는 이제 죽음에서 해방되었노라고 외치면서 머리없이 광장을 가로지르는 광인을 상상해보셨는지
13-1
머리 없는 광인 하나가 제 두개골을 옆구리에 끼고 광장을 가로지를 때 머리 없는 광인 둘은 두개골을 가슴에 안고 벤치에서 노래를 하고 머리 없는 광인 셋이 두개골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할 때 머리 없는 광인 넷은 서로 두개골이 바뀌었다고 멱살을 잡고 싸운다네
13-2
광장이 불길한 이유; 광장에는 다양한 유령들이 아니라 획일화된 유령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13-3
머리없이 뛰어다니는 축구선수는 없다 축구선수도 머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증발접시 안에서 속이 타는 물방울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다시 만날 때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노을이 되어 다시 만날 때 서로의 붉은 뺨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일까 지 수 화 풍 공 우리는 흩어지고 다시 뭉쳐지면서 재활용되는 윤회의 4원소 혹은 5원소들이다 우리는 먼지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같은 존재들이다.
커피를 마시는 오전 시간. 2011년 6월에 필사했던 최승호 시인의 아메바 문장들을 다시 타이핑해 본다.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무시무종 썰도 있긴 하나, 기시감이 넘 짙은 2024년 12월 현상들을 웃프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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