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잡짤하다
이슬받이: 이슬이 내리는 때. 길섶의 풀에 이슬이 맺혀 있는 오솔길. 이슬 내린 길을 걸 을 때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 이슬떨이.
하: '많이' '크게'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임.
노량으로: 어정어정 놀아가면서. 느릿느릿한 몸놀림으로.
해찰부리다: 어떤 일에 마음을 쏟지 않고 이것저것 손을 대다.
불출이가 걸음이 본래 유복이만 못한데다가 무겁지 않은 짐이라도 유복이의 짐을 대신 진 까닭에 동안 뜨게 뒤떨어질 때가 많아서 유복이는 하릴없이 노량으로 걸음을 걸었다. ㅡ 홍명희의 장편 『임꺽정』에서
여기 아낙네들은 내동 해찰부리며 늑놀아 해를 거우르다가도 설핏하기 전에 저녁을 앉히고 밝아서 개수통까지 한갓지게 가셔 얹어야 다른 소리 안 듣게끔 살림에 맛을 들인 줄로 여겼다. ㅡ 이문구의 연작소설 『우리동네 柳氏』에서
비전 위 나한전에서부터 비롯되는 이슬받이로 질러왔다지만 어둠이 하 무서워 밤새도록 울어예다 터져나오는 생채기 같은 갖은 메꽃들 앞에 숨죽이며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도리를 궁구해보고, 온갖 잡목들 우거진 말림갓 틈서리 사이사이로 떨어져 있는 산밤에 도토리와 상수리도 주워보며 이런 것들을 그 이름모를 여자대학생한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느라 노량으로 해찰을 부렸는데, 어젯밤 정근이 너무 과했는가. 심장은 고동치고 이마며 목덜미와 등짝에서는 땀이 흘렀다. ㅡ 글 쓰는 사람의 장편 <꿈>에서
허위단심: 갈 곳에 이르려고 허우적거리며 매우 애를 씀.
허우적이다: 헤어나거나 벗어나려고 손발을 내두르며 어줍게(부자유스럽게) 움직이다. 힘에 겨운 걸음걸이로 어줍게 걷다. 허우적허우적. 허우허우. 허위허위.
허위넘다: 허위단심으로 높은 곳을 넘어가다.
허위허위: 힘겨운 걸음걸이로 애써 걷는 모양. 북한에서 쓰는 말임.
허전거리다: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질 듯이 걷다. 허전한 느낌이 자꾸 일다.
허정거리다: 병으로 기운이 없어 걸음이 잘 걸리지 않고 비틀비틀하다. 허정허정하다. 허청거리다.
허짓허짓: 기력이 없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 허적허적.
톺아오르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오르다.
엎더지며 곱더져가며 허위단심 산길을 톺아오르면서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는 하였지만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ㅡ『꿈』에서
애잡짤하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안타깝다. 안타까워서 애가 타는 듯하다.
마루도리: 집을 지을 때 보에 동자기둥을 안치고 그 위를 다시 도리로 이어주던 '상량(上樑)'으로, '주제(主題)'라는 왜식 말 대신 써보았음.
♧
나는 스님을 따라갔다. 마지막 조선인이신 할아버지의 장탄식과 애잡짤한 홀어머니의 한숨소리가 눈에 밞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스님을 따라 산길을 톺아오르는 내 가슴은 마구 두방망질을 치던 것이었다.
스님은 다시 무문관(無門關)으로 들어가시고, 나는 큰절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하였다. 여섯 달이 지났을 때 십계(十戒)를 받은 나는 정각(正覺)이라는 불명과 함께 스님의 상좌가 되어 무문관의 시자실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계룡산 대자선림(大慈禪林)에서 격외도리(格外道理) 하나로 중생들과 그 도를 함께 하신다는 정영선사(瀞影禪師)께서 세운 무문관의 아래층에는 시자실이 달려 있고 천장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어 그곳으로 공양을 넣어드리게 되어 있었다.
스님한테서 받은 공안(公案)은 '무자(無字)'였는데, 『만다라』에서 마루도리로 삼았던 것처럼 그것은 '병 속의 새'였다. 산이었고 바다였으며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이나 과학 또는 제 아무리 날카로운 상상력으로도 접근이 불가능한 수수께끼였다. 위층에서 면벽중이신 스님한테서는 기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오직 새가 힘차게 깃을 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환각이며 환시 또는 환청에 시달리느라 끙끙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새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영원히 날지 않을 것처럼 두 다리를 굳건히 딛고 서서, 시간과 공간을 외면한 채, 날개를 파닥이기를 거부하는 완강한 부동의 자세로 날아야 한다는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따금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끄윽끄윽 음산하면서도 절망적인 울음소리만을 낼 뿐.'
무문관을 나오신 스님을 모시고 서울역으로 갔다. 해인총림(海印叢林)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스님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었다. 중으로서 해야 될 무엇보다도 첫째이며 그리고 또 마지막 길인 참선공부하는 법이며, 중노릇하는 법이며, 대중처소에서 살아가는 법도며…… 그렇게 나는 '중'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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