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시제 1호- 15호

미송 2009. 10. 19. 15:35

                       시제 1호- 15호

 

 나무가 띠벽지를 둘렀다 꽂꽂하다

 애완견 한 마리 두 사람 뒷모습이 꽂꽂하다 

 나무의 정렬방식은 갈빛

 갈빛 회로가 둥글어진다   

 길은 돈암동으로 넘어간다

 휜, 추억이다    

 

 

 누가 내 창문에 풀칠해놨니

 울먹이는 썬팅지

 물기 부족한 사물들 늘 저 모양이다

 밀착밀착 밀린 자국들마다 

 울먹이는 상처자국이다 

 

 

 반쪽 떨어져 나간 

 얼핏한 글자들

 다음 정거장이 어디인지 모른다

 다음 암호를 지팡이에게 묻고 앉은 저, 소녀

 꽃들의 암호는 레떼의 강이다

 

 

 단단하고 매끄럽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반질반질하고 올록볼록하다

 단단해서 지조있고 매끄러워서 감각있고 말랑말랑해서 너그럽고

 부드러워 잘 녹고 반질반질해서 낯설지 않고 올록볼록해서 심심하지 않다

 널 보면 자꾸 첫키스가 생각난다  

 

 

  뚜뚜뚜 뚜 우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전화기여

  너 아직 그 공중전화 부스에 있었구나

  손자국 한번 씻긴 자리가 낯익다

  입김 닦아내던 지난 겨울

  통화내용이 낯설다 허공에

  뚜뚜 뚜 우우 우

  자진모리 세마치로 울려대는 너의 가락

  너의 내 사랑,

   

 

미우라 아야꼬의 치맛자락 같지 않니

빙점氷點에 이르도록 걷는 모습이

굳이 용서의 발자국 찍지 않아도 

나비 옷으로 날아가는 저 뒷모습을 봐

물기의 응결점은 저렇게

원점을 향할 때 생겨나는 것일까    

 

 

 

 

 난 통증을 견디는 데는 잼뱅이라서

 너 처럼 제 살 태워 성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너도, 움찔 마음 내 보이며

 나도 아픈 건 싫다 고 울지도 모른다 거짓말처럼

 너무 흔한 것은 너무 흔하게 비유된다  

   

 

  나도 맨 처음 10개월동안은 양수에서 수영을 배웠다 그리곤

  손수건 달지 않은 코 찔찔이처럼 울고 나왔다

  엄마는 내 위로 죽은 두 오빠 때문에 오래 울었다 그러나

  40년이 넘도록 익혀온 표지판 그림속에는

  오빠의 길이 비치치 않는다

     

 

  

 늙어빠진 수초의 꿈

 드문드문 열리는 시간은

 과거는 언제나 소나기로 쏟아지고

 너 빈 자리 짜르르르 긴 막대 하나 누워있다

 너는 그 때 징검다리로 살아주겠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달력을 넘겨주겠다고

 고운 이빨 새 날아가는 새처럼 말했다 향긋했던가

 너 누운데 발 얹으려니 차갑다

 세상이 온통 추워져서 

 

 

 

 더욱 자욱했으면 좋겠다

 냉기 실은 열차 한 번 지나고 난 길

 따스한 풀과 동글동글한 돌들만 모여 그렇게

 온화한 아침 얼굴로 내내 쌓여갔으면 좋겠다

 밤이 와도 안개에 쌓여 어둠조차 살지 않는

 두 갈래 빗살무늬로 환한 안개로

 더욱 자욱했으면 좋겠다

 

 

     

  요즘 생식을 즐기려는 나는, 마늘 오이 양파 고추 당근을 팩에 넣어둔다

  자연물이 위장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거치며 뜨거워진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눈빛이 나의 내장 속에서 번뜩인다

      

 

 뻥치기 좋아하는 어른들처럼

 폭죽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다

 현란하다 허황되이 소란스럽다

 도시엔 또, 출처모를 폭죽처럼

 호텔 캘리포니아 음악이 쏟아진다지  

 

  

아해가 여섯 올라탔소

아해를 태우고 있는 아해가 셋인가 넷인가 하오

맨 앞 줄 손을 든 아해가 웃는가 보니 무서워 하오 

그 아해가 대빵 자리를 지킬지 나도 궁금하오

아해가 대문간에 서서 망설이고 있소

아해가 작게 울고 있소 

아해가 보이진 않고 왼손만 내밀고 있소

다른사정은있어도좋지만없는것이차라리낫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아해들이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모든 헛소리나 혹, 거짓말은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을 때와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을 때, 

 간극의 한 끝 소리였다 

 

 

돋보기를 쓰시나요

시력(詩力)과 시력(視力)이 다 나빠졌다구요

볼록한 배로는 아이의 움푹한 눈길 볼 수 없어

편견의 옷 벗고 걷다보면 거꾸로

하얀  변곡점 하나 찍을 수 있겠죠.

 

2009. 10. 19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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